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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과 성처를 가지고 산다.

그것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치유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어제 어머니 산소를 고양시 푸른솔공원에 안치했다.

어릴적부터 나를 바라보는 가족과 친척들의 시선에서

미안함과 죄스러움,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뒤로는 내 어머니 묫자리 때문에 집안 일이 안 풀리고

집안 식구들 일이 안 풀린다는 푸념도 내 귀에 들렸다.

 

상처는 내가 드러내고 치유해야 한다.

어머니 묘도 개장하여 이장을 하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집안 식구들을 만나

듣기 시작하면서 의문점들이 하나 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이장을 하는 과정에서 집안 일이 풀리지 않은 것도

어머니 묘 때문이 아님을 다들 눈으로 생생히 보았고,

어머니 묘가 명당이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 받았던 억울한 누명에서 깨끗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어릴때 그렇게 많이 울었단다.

아침에 울면 저녁때까지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다섯살 이전 기억이 없다.

어머니 얼굴을 아무리 기억하여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26개월째이면 희미한 기억이 날만도 한데.....

 

아내는 나에게 최면심리치료를 권한다.

아마도 세살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충격이

너무 컷을 거라고.....

내 곁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과

어머니를 찾아도 더 이상 내 눈에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를 찾으며 밤낮으로 울었던 충격이

트라우마가 되고 말더듬이 되었을거라고.

이제 마지막으로 최면심리치료를 통해 꿈에서라도

꼭 한번 뵙고 싶었던 어머니 모습을 뵈야

나의 마지막 치유가 될거라고.

나도 꼭 최면심리치료를 받아보고 싶다.

상처의 치유는 내 몫이이까.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지 1년 3개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장남이고

아들이 귀한 터라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서둘러 아버지를 장가보내셨다.

아버지는 고3시절에 '새신랑'이라고 놀림을 받으셨단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엄마 뱃속에 터를 잡을 즈음

할머니께서도 이미 늦둥이를 잉태중이었다.

나와 막둥이 삼촌이 동갑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대여섯달 뒤 또 다시 내 동생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6개월 뒤 군 입대.

남겨진 결과에 대한 선택은 모두 어머니 몫. 

 

시골 교장댁 셋째딸로 곱게 자라

장손집 장손며느리로 시집온 어머니는

장손집안 며느리 역할에

아버지 형제자매 5남2녀의 뒷바라지,

더구나 막내시동생이 나와 동갑에

또 내 동생이까지 들어서니

연년생으로 낳아서 키우기가 난감해졌던 모양이다.

그때 곁에 아버지라도 계셨더라면.....

 

어머니는 결국 내 동생의 유산을 결정한다.

1960년 시골에 제대로된 병원이며 약국이 있었겠는가?

민간요법을 택해 유산을 시도하였다가

어머니는 하혈을 계속하면서 자리에 눕게 된다.

설날과 보름을 보내고 친정집에 몸을 추수리러 가셨다가

어머니가 다시 우리집에 오실때는 이미 차가운 몸이었다.

 

어릴때 돌아가신 엄마 옆에서

엄마가 묻히신 이후에도 나는 계속 그렇게 울었단다.

고모님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장롱을 열어보니 장롱 깊숙이에서 고이 싸놓은

누룽지가 나오더란다.

독한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니 젖이 말라

나에게 먹일 수가 없어 젖달라고 보채고 우는 나에게

몰래 누룽지를 끓여서 먹이셨다고 한다.

내 어릴적 별명이 울보였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치지를 않았는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본능이 아니었을까?

 

다음달 15일,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를 화장하여

서울 근교 납골당으로 모셔온다.

아내가 가장 큰 원군이 되었다.

3년전 아버지의 반대로 이장을 못하였다.

올해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승낙을 받았다.

"55년 7개월동안 아버지는 어머니를 곁에두고

실컷 보셨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곁에 모시고

보고 싶을때는 언제든지 달려가 실컷 볼랍니다."

 

너무도 일찍 돌아가셔서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은

제발 꿈에서라고 한번 뵙고 싶은 어머니를

이제야 제 곁에 모시고 그리울 때면

비록 어머니 유골이지만 자주 찾아뵈려 합니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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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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