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서울벤처대학원 2학기 개강일이었다. 새로운 원우들과 교수님을 만나 배움을 계속하는 만학도의 설레임으로 낮시간을 보내었다. 앞서 새벽 두시에 셋째 처형의 임종소식을 듣고 새벽부터 하루를 분주하게 맞이하였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경찰병원 영안실로 달려가 장례준비를 같이 도우면서 몇달 전 내가 가입해 두었던 기안라이프웨이 상조보험을 동서에게 양도해주고 나는 2학기 개강일로 학교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쌍둥이들을 데리고 경찰병원으로 갔다. 불과 며칠전 용인 샘물호스피스 병원에 병문안을 가서 뵌 분이 돌아가신 것을 보고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었다.
일요일에도 쌍둥이들을 집에서 지내도록 했고, 오늘 새벽 6시 20분에 발인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쌍둥이들을 데리고 발인행사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잠시 하였지만 데려가지 않기로 하였다. 아직은 16살이란 나이가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시신이나 화장하는 과정과 화장후 유골을 보게 되면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크지 않을 까 하는 노파심이 컸었다. 그리고 아침에 출발이 늦었는데 녀석들을 깨워 집을 나서려면 월요일 아침 출근길과 뒤범벅이 되어 발인예배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늦어질지 모른다는 내 개인적인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발인식 내내 후회로 바뀌어갔다. 목사님 발인예배를 시작으로 연지동 화장장으로 이동, 하관예배, 이어 화장을 거쳐 결국 한줌의 재로 돌아가 분당추모공원에 묻혀 자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쌍둥이들이 보았더라면 하는 후회로 변해갔다. 삶은 부모의 강요가 아닌 결국 자신 스스로의 마음과 선택, 즉 하고자 하는 결심과 실천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아직은 어리니까 하는 내 자의적인 판단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듯 하였다.
집에 도착하닌 재윤이도 자신들을 데리고 갈 줄 알았는데 데리고 가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어쩌면 녀석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각이 깊어지고 사고의 폭도 깊어졌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녀석들을 부모 품에 안고 있기보다 세상 밖으로 내보내 지금보다 더 많고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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