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죽도록 힘든 시절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2005년 전 아내의 말기암 판정,
2006년 11월, 1년 6개월 투병을 하고 하늘나라로 간 이후,
아내가 투자실패로 남기고 간 빚과 남은 세 자식, 장모님을 모시고 4년을 같이 살았다.
빚과 생활고에 시달려 죽고 싶어도 남겨진 자식이 눈에 밟혀
애비마저 죽으면 남겨진 세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나 혼자 죽을 수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전월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보증금이 전부였고,
여기저기에서 아내가 빌렸던 돈을 갚아 달라고 하는 곳은 많아서 하루
하루가 빚과의 전쟁이었다. 급여는 기초생할비만 빼고는 모두 법원에
개인회생으로 갚아나가고, 기초생활비로는 빚을 갚았다.
부족한 돈은 연차를 이용해 강의를 하여 받은 강사료와 컨설팅을
해서 받은 컨설팅fee로 월세와 쌍둥이자식 학원비를 충당했다.
이 이상 더 떨어질 나락이 없을 것이라는,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나에게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 내 머릿속에는 법원이든 어디든 어느 누구도 압류하지
못하는 지식재산이 있으니 반드시 재기하고 말겠다는 오기와 열정이
나를 버티게 했고, 다시 재기하게 만들었다.
2010년말, 내 마지막 현금재산이었던 2000만원도 장모에게
그동안 쌍둥이자식 키워준 사례로 드리고, 장모님과 결별 후 재혼을
택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쌍둥이들 교육 때문에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처복이 있어서 좋은 반려자를 만나
10년만에 자식들 교육도 성공했고, 마이너스 재산에서 지금은
강남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나도 다니던 회사를 일반퇴직하고
내가 꿈꾸던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도 창업하여 운영 중이고,
경영학박사 학위 취득, 아내는 경영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재혼 후 다섯자식은 대기업 과장, 의사, 간호사, 대학교 재학
등 각자 위치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생은 마지막 순간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자이다.
나는 내 나이 51살에 최악의 바닥을 찍고 그 이후 고생 끝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말자.
포기는 죽기 전, 내 힘으로, 내 육신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다.
기회는, 귀인은 언제 어느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힘들어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는 포기하지 말자.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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