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가 고3이다.
요즘 애들답게 인터넷에 푹 빠져 있다.
꿈은 제2의 안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3년전 고등학교 진학건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나와 집사람은 인문계를 진학했으면 하였지만, 큰애는 실업고를 우겼고 학과까지도 인터넷정보학과로 일찌감치 점찍어 두고 있었다. 세상을 보다 많이 살어온 부모의 경험상으로는 실업계 고등학교는 취업위주 교육을 시키므로 대학진학 수업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게 된다. 지금 세상이 학력위주로 움직이는데 그래도 대학을 진학했으면 했고, 대학을 진학하려면 정상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설득을 했는데 막무가내로 우기니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승낙을 해 주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큰애가 후회를 많이 하는듯 보였다.
실업계 고교이다보니 진학하려는 학생과 취업하려는 학생으로 나뉘고, 그러다보니 수업분위기도 엉망이고, 학교에 가도 정상적인 수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 2년간 학원도 다니다 중도에 때쳐 치운 적도 몇번 있었지만 본인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큰소리 치기에 그동안 믿고 기다렸다.
그 와중에 집사람이 작년 5월에 암판정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심해졌다.
1년에 5,000만원도 더 드는 암 치료비에 가슴을 쥐어짜며 초등학교 3학년인 쌍둥이들 학원까지 끊었다.
큰애도 올해 3월, 그 아끼던 컴까지 팔아서 엄마 병원비에 보태라고 38만원을 내 놓을때만해도 '가족의 고통을 겪으며 큰애가 성숙해 졌구나!' 우리 부부 서로 부등켜 안고 논물을 흘리며, 집사람은 꼭 병마를 이겨내리라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졌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때,
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집사람과 큰애가 한바탕 설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큰에는 이제 시험이 4개월도 채 남지 않다보니 학원을 다녔으면 했는데 형편상 말은 하지 못하고 있는데 빈둥빈둥 자고 있는 큰애 모습을 보고 답답하여 한마디 하였더니 두눈을 부릅뜨고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엄마아빠가 저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어요?"
자식교육 잘 시키고, 뒷바라지 잘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고3인 자식, 초등학생 쌍둥이들 학원도 보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 찢기고, 가슴이 아프거늘, 당장 지 어미의 삶의 마지막이 내일이 될지, 한달 후가 될지 모르는데, 그런 철없는 말을 내 뱉다니...
큰애를 불러다 야단을 쳤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너는 평생 네 엄마를 업고 다녀도 부족하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네 엄마에게 꼭 그런 말을 해야만 네 속이 후련하겠느냐?
그렇다면 반대로 너는 엄마아빠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부모는 살아있는 그 자체로도 커다란 그늘이란다."
큰애는 금새 잘못을 뉘우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엄마에게 빌고 겨우 수습을 시켰지만,
휑하니 뚫린 나와 집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2006.7.10.
김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