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 '슬(蝨)'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보통 이 또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서캐를 말하지만
빈대와 벼룩을 이를 때도 쓰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 20여 년 만에 '빈대'가 서울에 출현했다는
소식이 있었으니, 오늘 소개하는 우화의 주인공으로
'이'나 '서캐' 대신 '빈대'를 등장시켜 보겠습니다.
세 마리 '빈대'가 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돼지에게서 피를 빨아 먹던
빈대 셋이 싸움을 벌입니다.
서로 여리고 살찐 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낯 선 빈대가 지나치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한 마디 합니다.
"너희들 뭘 가지고서 그렇게 다투느냐"고 묻습니다.
싸움에 열중이던 빈대 세 마리는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다보니 싸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낯 선 빈대가 정색을 하며 다시 묻습니다.
"조만간에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계절이 닥치고
있음을 아느냐"는 질문입니다.
세 마리 빈대는 그 물음의 진의를 의아해 하며
이 낯선 빈대의 이어지는 발언을 경청합니다.
이에 그 빈대가 다시 말을 잇습니다.
"제사가 닥치면 살찐 돼지는 곧 장작에 구워질
것이다.
이럴 경우 너희들의 편안한 먹잇감은 제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 살찐 돼지만 없어지겠느냐?
그 위에 더불어 기생하던 너희 빈대 또한 사람이
놓는 불에 함께 태워질 운명이 될 것이다.
돌연하면서도 상황의 정곡을 찌르는 이 빈대의 말에
세 마리 빈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광이라는 빈대의 충고대로 서로 다투지
않고 적당히 자리를 나누어 제 자리에서만 돼지의
피를 빨아 먹습니다.
따라서 빈대에게 피를 많이 빨려 수척해진 이 돼지는
제사의 희생물을 고르는 사람들의 눈을 비켜갈 수
있었으니 빈대 좋고 돼지 좋은 결과의 해피엔딩을
맞게 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세 마리 빈대가 돼지를 먹다(三蝨食體-삼슬식체)'라는
내용의 우화입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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