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판(승)은 출가하여 부처님 말씀만 궁구하고 수행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스님을 일컫고, 사판(승)은 절에서 재물이나 일반 행정(산림)을 담당하는 스님들을 일컫는 말씀이라 합니다.
물론 이판승은 사판승이 해 주는 아침밥을 먹고 면벽참선으로 하루를 보내고, 사판승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지으랴, 땔감 준비하랴, 산림(절의 재산)을 관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이판승과 사판승"의 얘기를 화두로 삼아 시작해 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절에 일 년 내내 나무하랴, 밥하랴, 바쁘기만 하던 젊은 사판승 한분이 자기 일에 불만이 쌓여, 친구 스님과 함께 꾀를 냈다고 합니다.
"야,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왜 우리만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거지? 저 이판승 놈들은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 매일 우리가 해주는 밥이나 쳐 먹고 면벽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
"우리는 대체 뭐냐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는 바에야, 우리가 지네들 종이야 뭐야! 우린 죽도록 고생만 하고 말이야!
에이! 더러워서 우리도 이판승이나 하자."
생각할수록 분한 마음에 사로잡힌 두 사판승은 의기가 투합하여 주지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두 사판승의 이야기를 다 들은 주지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 그러면 너희들도 내일부터 이판승 해라. 그 대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딴소리라뇨. 스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은 두 사판승은 이제 꿈에 그리던 이판승이 되었음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주지방을 나섰습니다.
"야! 우리도 이젠 이 지긋지긋한 산림 관리의 일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 앗싸~!"
다음 날, 두 스님은 다른 사판승들의 부러움을 사며 면벽참선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신선놀음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자신들이 참선을 하는지 여자 생각을 하는지 알 턱이 없으니 오만 생각에 빠져 즐겁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시원한 바람은 열어 놓은 창을 타고 장삼자락을 스쳐가고, 그야말로 꿈인지 생신지, 너무도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면벽참선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열흘이 가고 스무날이 가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니까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좀이 쑤시고 이제는 시간마저 자신들을 붙들고 가지를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어서 빨리 저녁이 되기를 바라게 되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고... 아! 이젠 정말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별 생각 없이 밥 하고, 나무하고, 청소하고... 등등 몸으로 하던 일들을 한 순간에 접고 그냥 앉아서 면벽수행을 한답시고 빈둥대며 앉아 있으니 얼마나 큰 고역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이젠 정말 더 이상 참선방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산으로, 들로 다니며 뙤약볕을 쪼여도 좋으니 맘껏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옛날 밥 짓고, 빨래 하고, 장작을 패고, 물 깃는 일이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아! 옛날이여!!
우리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우린 사판승 체질인가 봐~!
그래도 주지 스님한테 딴소리 안 하겠다고 단단히 약조를 해놓았던 참이어서, 속만 끓였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날도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풀 죽은 모습을 하며 천근만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참선방을 향했습니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얼떨결에 이판승이 된 친구가 더 고역이었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친구를 한 대 패 주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고, 이제 와서 친구를 탓해 봐야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벽을 쳐다보고 있자니 좀은 쑤시고, 잠은 오고...
아~, 그래도 잠을 자면 안 됩니다. 만약 잠을 자다가 돌아다니는 주지 스님에게 들키는 날이면 죽비로 두들겨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기 한 대 잘 못 맞으면 머리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잘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 고문도 이런 상 고문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 친구가 자기를 꾄 친구
옆구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야! 이거 우리 그만 하자. 이건 사는 게 아니라 차라리 죽음보다 못하다."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주지 스님과 굳은 약속을 했으니..."
"뭐! 그렇다고 설마 죽이시기야 하겠어?"
이렇게 결심한 두 스님은 그 날 끝장의 심정으로 주지 스님을 찾았고, 스님방을 물러나올 때는 이마에 커다란 혹을 두 개씩 달고 나왔습니다.
이마에 달린 혹 두 개로 그 지긋 지긋한 이판승 생활을 청산 할 수 있다는 데 두 스님은 아주 천만다행이라며 만족해 했습니다.
(회사 조훈 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김승훈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향초 이야기 (0) | 2009.09.14 |
---|---|
카네기 이야기 (0) | 2009.09.09 |
보은(報恩) 이야기 (0) | 2009.09.07 |
삼슬식체(三蝨食體) (0) | 2009.07.13 |
'~때문에' 와 '~덕분에' (0) | 2009.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