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경, 모처럼 큰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주 월요일 입대를 앞두고 있다.
큰애 : "아빠! 재명재윤이 선물해주려고 행사에 응모해서 영화시사회 초대권을 받았는데 7월 19일이예요. 그때 애들 보내도 돼요?'
나 : "몇시인데?"
큰애 : "오후 4시 30분까지요"
나 : "그럼 학원수업에 빠지게 되잖아?"
큰애 : "그래서 전화드리는 거예요?"
나 : "글쎄, 아빠는 학원을 빼먹으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건 반대다"
큰애 : "애들이 보고싶어하는 만화영화예요. 그리고 제가 입대하면서 마지막 선물로 해주고 싶었어요"
나 : "아무리 쌍둥이들에게 좋은 만화영화라도 학원수업을 빼먹고 가는건 동의할 수 없다. 지난 1학기 성적이 어떠했는지도 너도 잘 알잖아?"
큰애 : "요즘 아빠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 장래 잘 알아서 하라고 하시잖아요, 애들이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무료 시사회인데요. 그리고 지영이누나가 와서 재명재윤이랑 함께 가서 봐주기로 했어요 "
나 : "그래도 안된다. 그렇게 녀석들이 보고 싶어한다면 나중에 학원수업이 없는 휴일날 아빠가 돈을 들여서라도 보여주면 되잖니?"
큰애 :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어미도 없이 자라는 자식들, 이제 홀로 남은 애비 마음은 하루 하루가 너무 바쁘고 급한데 쌍둥이들은 아직도 철없이 서로 매일 아웅다웅 다투고 싸우니 안타깝기만 하다. 며칠 후면 큰애도 군입대를 하면 저 녀석들을 어찌 데리고 살꺼나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쌍둥이들이 늦둥이다보니 내가 회사에서 정년퇴직할 해 녀석들이 정상적으로 다닌다면 대학교 3학년 1학기이다. 내 혼자 수입으로 여지껏 빚더미 속을 헤쳐나오며 내 입에는 항상 같은 말이 배어 있었다.
"애비가 건강하고, 직장 다닐때 부지런히 촌음을 아껴 공부해라"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말고,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거라"
"TV나 PC게임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라"
"우리 나중에 서로 짐되는 존재는 되지 말자"
큰애 말을 듣고 보니 이런 말들이 어린 쌍둥이들에게 심리적으로 너무 큰 부담을 주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효~ 나는 그동안 애들 마음도 읽지 못하고 그저 성적에만 목을 매고 자식들을 채근하는 못난 애비였구나~
급기야 회사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말고 큰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그냥 다녀오라고 했다.
"아빠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요?"
"아니다, 그동안 애비가 너희들에게 너무 무거운 마음의 짐만 계속 쉴새없이 얹어준 것 같구나. 쌍둥이들에게 영화 잘 보고 대신 방학 때 정신차리고 수업 빼먹지 말고, 책 많이 읽으라고만 얘기해라"
갔다 오라고 허락을 해놓고도, 왜 이리 내 마음이 아플까?
쌍둥이아빠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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