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홈페이지(www.sgbok.co.kr)

 

2월 26일 ~ 27일까지 이틀간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에서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 결산실무2차> 교육을 진행하고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후코오카 인문학기행을 다녀왔다. 3월 1일은 3.1절로 3.1운동이 일어난지 105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감정적이다. 인진왜란과 정유재란, 일제 36년의 식민지통치 영향인지 일본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反日감정이 주류이다. 어느 사람이나 국가, 제도이든 상대와 논쟁하려면 먼저 그 상대를 연구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克日이 되고 일본을 넘어설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나 기술수준, 국력 등이 앞서 있다. 

 

이번 일본 후코오카 인문학기행은 일본은 근대화로 이끈 메이지유신의 심장부인 하기로 가서 근대와과정, 그리고 일본 근대화와 공업화를 이끈 중심인물인 요시다 쇼인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는 없지만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계 외투법인들 중에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설치된 기업들이 있고, 실재 내가 몇군데 일본계 외투법인의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컨설팅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었다.

 

이번 여행에서 1일차인 2월 28일은 일본 나라시대 백제인의 토목기술로  쌓아올린 수성터와 수성관, 1300년 전 고대 큐슈의 정치외교의 중심 다자이후(大宰府)정청(큐슈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 큐슈국립박물관(2005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도쿄, 교또, 나라에 이어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 탐방을 했고,  2일차인 2월 29일은 모지항(큐슈항의 끝에 있는 메트로항구로서 일본이 개항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그만 어촌마을이었는데 정책적인 개항으로 1910~20년대 번성했던 곳으로 당시 풍경들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칸몬해협드라마쉽(칸몬해협은 사무라이 시대를 연 원점이자 사무라이 시대를 끝낸 마지막 종점이기도 하며 일본의 일본산업혁명의 발자취를 드라마로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구 미쓰이상사구락부, 삼의루(모지항에 있는 요정), 하기도자기자료관, 하기박물관, 하기성터를 탐방했다.

 

3일차인 3월 1일은 이번 기행의 하이라이트로 쇼인신사(일제의 한국침략과 대륙 진출의 이론적 토대가 된 《유수록》을 저술하여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하여 메이지유신의 동력이 된 요시다 쇼인을 모신 신사, 쇼인 밑에서 이토 히로부미 등 걸출한 인재들이 나와 쇼인의 이론을 현실화시켰다), 쇼카손주쿠[조슈번사 다마키 분노신이 나가토국 하기성에 개설한

사설학당으로 원래 야마가류 병학을 가르치던 사숙이었으나 설립자인 조카 요시다 쇼인이 재인수해 존왕양이(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 사상을 퍼뜨렸다. 기도 다카요시,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등 이른바 조슈번 유신 지사들이 모두 그의 제자로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유신의 요람이 됐다], 요시다 쇼인 역사관, 이토 히로부미 생가와 별저, 에도야와 키쿠야 골목 투어, 메이린학사(구 번교 명륜관), 하기우라가미미술관 탐방을 했다. 4일차인 마지막 3월 2일은 일청강화기념관(청일전쟁 후 1895년 4월, 일본과 청 간에 시노모세키조약이 체결된 장소), 아카마신궁,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를 탐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고려대 신창호교수님이 함께 동행하여 자세한 해설을 해주셨다. 결국 우리나라는 계속 쇄국전쟁을 고수한 반면, 일본은 상황을 빨리 판단하여 개항을 하여 메이지유신을 통해 산업화를 이루면서 강대국이 되어 조선과 만주를 점령했다. 상황 판단력과 실행력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주역》에도 때에 따라 형세가 바뀌면 변할 수 있어야 하고, 변할 수 있을 때 변하지 않으면 무너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도 연구소 교육에 참석하는 기금실무자들에게 이런 내용들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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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 김승훈(사내근로복지기금/공동근로복지기금&기업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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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2)2644-3244, 팩스 (02)2652-3244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112길 33, 삼화빌딩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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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월요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에서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 결산실무2차> 기금실무자 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결산실무 2차교육에서도 수강자 중 3분의 2는 직접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자체  2023년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인 결산을 잘 마무리하였고 절반 정도는 2024년 사내근로복지기금 사업계획서 및 예산서와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관련 신고서식들을 다운로드 받아서 2023년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인 법인세과세표준신고서식, 운영상황보고서, 법인지방소득세 과세표준신고서식까지 완성해서 돌아갔다. 몇개 업체는 결산에 필요한 자료들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관련 자료 미비로 결산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인 결산 FLOW와 신고서식 작성법을 파악했기 때문에 회사에 복귀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월 26일과 2월 27일 양일 모두 교육을 마치고 밀린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결산컨설팅업체 결산작업과 공동근로복지기금 해산컨설팅 작업을 하느라 늦은 밤까지 야근을 했다. 컨설팅은 정해진 기한이 있어 그 기한을 지켜주어야 한다. 기금법인 합병이나 분할, 해산컨설팅을 하다 보면 특이한 사항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무관청으로부터 새로운 행정해석을 받아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여 고용노동부에 서면으로 행정해석을 요청했고, 동시에 공동기금법인 해산에 필요한 정관변경 작업을 진행해서 정관변경 인가신청까지 자료들을 작성해서 송부해주었다. 개인적으로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후코오카 인문학기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시간과 일정에 쫓기고 있다.

 

문득 카렌다를 보니 2024년 2월 16일은 내가 (주)대상에서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하여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를 시작한지 만 31년이 된 날이었다. 2013년 11월 5일 만 20년 8개월 20일간 내 열정을 바쳐 일했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일반퇴직하고 내 자비로 주식회사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창업하여 만 10년 넘게 운영하며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 연구, 기금실무자 교육,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과 운영, 회계와 결산, 합병·분할합병, 해산 컨설팅 실무를 계속하고 있다.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식과 경험은 계속 축적되어 가고 이를 책으로 쓰고,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 실무에서 활용하며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계속 연구하게 된다.

 

요즘도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로 출근하여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공동근로복지기금 결산컨설팅과 연간자문사 코칭,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 칼럼을 쓰며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호기심이 발동되어 한번 꽂히면 도전해서 끝장을 내고야 내 성격과도 잘 맞았던 것 같다. 덕분에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를 부단히 연구하고 발전시켜 기금실무자 교육도 20년째 진행하면서 궁금하거나 정리가 필요한 사항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내근로복지기금 예규들을 만들었고 지금의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 회계처리 틀과 업무 매뉴얼의 기반도 만들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에 대한 열정과 도전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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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 김승훈(사내근로복지기금/공동근로복지기금&기업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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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일본 후쿠오카 인문학기행 4일째
 일본 후쿠오카 인문학기행 마지막 날이다.

1. 일청강화기념관
이곳은 청일전쟁 후 1895년 4월, 일본과 청 간에 시노모세키조약이 체결된

유서깊은 장소로  야마구치현 시노모세키시 슌판로(春帆樓) 안에 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국을 청나라 이름보다 앞에 내세웠다.
제1조가 조선의 독립국임을 양국이 인정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조선은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새로운 왕이 오를 때마다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후국이었다.
이로서 일본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요구했던 정명가도 

명분를 살려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며 만주까지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든다.
조약 체결의 중국 대표는 이홍장, 일본 전권대표는 이토 히로부미다.
당시 청나라는 전쟁배상금으로 청나라가 거둬들이는 연 조세의 두 배를 지불했다고 한다.
당시 노구인 리홍장이 승전국 대표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배상금을 깎아달라고 

비굴할 정도로 읍소하고 애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패전국의 설움이다.

2. 아카마신궁
아카마신궁은 야마구치현 시노모세키시에 위치한 신사로 일본의

안토쿠천황을 모시는 신사이다. 궁은 천황이나 황족과 관련있는 신사이다.

에도시대까지는 안토쿠 천황 어영당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사철인 아미타사였으나

일본재국시기 신궁으로 개조되었다.


3.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시노모세키는 일본의 관문이다.

조선통신사들이 다마도를 거쳐 일본에 올 때 관문인 이곳에 들렀댜고 한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던 장소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1년 8월 25일에 세웠다. 이 비석이 뜻깊은 이유 중 하나는 이 비석의 돌이

한국 화강석이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를 새울 당시 야마구치현 지사가

특별히 한국 포천에서 공수해온 화강석이라고 한다.

조선통신서 상륙엄류지지는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비석의 중앙에는 당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쓴 비문이 크게 적혀있다. 

 

3박 4일 일본 기행을 마치고 나이 일본 메이지유신에 대한 전후 역사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하여 자세한 헤설을 해주신

고려대 신창호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바쁜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일정 속에서 이번 여행에 온 보람을 느낀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일본 후쿠오카인문학기행 3일차(2024.3.1.)

3.1절이다.
논쟁하려면 먼저 상대를 연구하고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오늘 드디어 일본 메이지유신의 심장부인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역대 일본총리 8명을 배출한 야마구치 현의 작은 도시인 하기에서

이곳이 배출한 메이지유신과 일본 산업화를 이끈 기저 인물인

요시다 쇼인을 알아보려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1. 쇼인신사.
쇼인신사는 요시다 쇼인을 모시는 신사로 1907년 이토 히로부미로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경내에는 마쓰카게가 주재한 사숙 "쇼카손주쿠"나 마쓰카게의 고인의 필적이나

유품류 등을 전시하는 "지성관", 마쓰카게의 생애를 쓰는 "역사관" 등이 있다.

요시다 쇼인은 서민 출신으로 정한론을 넘어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점령하고

지배하여 유라시아로 진출해서 유라시아와 대등하게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이론을 만들어 제자들에게 교육시켰다.
당시 일본에 와서 개항을 요구하는 거대한 서양 흑선과 이들 군항에서 발사하는

대포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무력으로는 절대 이들을 이길수 없음을 깨닫고

제자들에게 일본이 미국, 영국처럼 큰 군함, 대포를 만들지 못하면 청나라 꼴

난다고 주지시켰다.
이동이 제한되었던 서슬 퍼런 막부 감시하에서 자신이 직접 미국으로 

밀항하여 미국 산업시설을 둘러보려고 페리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며 밀항까지 시도했던 행동파 개혁 인물이었다.
그의 제자들 98명 중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와 쇼인의 이론을 

현실화시키며 일본국을 신흥산업국으로 바꾸며 제국주의 국가로 이끌었다.
이토 히로부미도 그 중 한 명이다.
일본인은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요시다 쇼인은 이미 일본에서 일본산업화를 연 인물로 신격화되었고 쇼인신사는

점차 성역화되어가고 있었다.
쇼인신사가 일본산업화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로서는 허를 찔린 결과이다
이번 여행에서 쇼인에 대한 도서를 중점적으로 구입했다.

2. 쇼카손주쿠

쇼카손주쿠는 조슈번사 다마키 분노신이 나가토국 하기성에 개설한

사설학당으로 원래 야마가류 병학을 가르치던 사숙이다.

설립자인 조카 요시다 쇼인이 재인수해 존왕양이(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 사상을 퍼뜨렸다. 

기도 다카요시,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등 이른바 조슈번 유신 지사들이

모두 그의 제자로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유신의 요람이 됐다.   


3. 요시다 쇼인 역사관
작년까지 공사중이었는데 올해 개관했다고 한다.
요시다 쇼인의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역사를 기록하고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주요 사건들을 재현시켜 놓았다.

4. 이토 히로부미 생가와 별저
원래 이곳 출생은 아니지만 8살 때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서민 출신으로 요시다 쇼인에게 1년 2개월 밖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863년 영국 6개월 유학을 통해 거듭 태어났다.
메이지유신시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조슈번 5걸 중 한명으로 꼽힌다.
야스쿠니 신사 제1호이다.
나에게는 쇼인 다음으로 중점 연구대상이다.

5. 에도야, 키쿠야 골목 투어

6. 메이린학사(구 번교 명륜관)
1935년에 건축된 구 메이린 초등학교였던 목조건물로 현재 국가 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으로 과거 번교라고 불렸던 에도 시대의 공립학교이다.

메이지유신을 이끌던 핵심적인 인물들을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다.

목조 건물로서 규모가 일본 최대급으로 현재 관내에는 레스토랑,

특산품 가게 등이 있으며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을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와 에도 막부 말기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름은 명륜관인데 한국과 중국의 유교성지인 명륜당과는 거리가 멀다.

7. 하기우라가미미술관
하기 출신의 사업자 우라가미 도시로가 세운 미술관으로 우라가미 도시로

개인이 수집한 미술품 600점을 기부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지금 이 시간에도 자료를 정리하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선 현실적인 

내 자신이, 내 나라의 상황과 실력, 국력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내가 

노력하여 힘을 길러 강해야 나와 나라를 지킬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백번 말 보다는 하나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일본 후쿠오카 인문학기행 2일차(20240229)

내일이 3.1절이다.
점점 일본 근대화와 조선침략의 근간이 된 메이지유신의 심장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 탐방지역은 다음과 같다.

1. 모지항
모지항은 큐슈항의 끝에 있는 메트로항구다.
일본이 개항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그만 어촌마을이었다는데 정책적인 개항으로 

1910~20년대 번성했던 곳으로 당시 풍경들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2. 칸몬해협드라마쉽
칸몬해협은 큐슈와 혼슈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한국의 명량처럼 해류 변화가 심하다.
칸몬해협은 사무라이 시대를 연 원점이자 사무라이 시대를 끝낸 마지막 종점이기도 하다.
일본은 칸몬해협 위에 길이의 다리를 놓았고 다리 길이는 1킬로미터가 넘고 

1973.11.14.개통되었다. 당시는 동양 최장 길이의 다리였다.
여기에 더해 바다 밑 150미터에 세계 최초로 해저터널을 건설했다.
칸몬해협드라마쉽은 자랑스런 제철, 조선, 철도 등 일본산업혁명의 발자취를

드라마로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3. 미쓰이구락부
일본이 개항하면서 모지항을 정책적으로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의 석탄, 면화, 밀, 

원당, 광물자원 등 해상 물자들이 들어오고 이를 가공하여 제품으로 수출하는

해상무역의 거점이 되었다.
그 중심에 일본 상사들이 있다.
미쓰이상사는 한국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의 롤모델이었던 것 같다.
밀과 원당옥수수를 수입해서 밀가루와 설탕을 만든 제일제당, 면화를 

수입해서 옷감을 만든 제일모직, 비료를 만든 한국비료 등.
구락부는 클럽으로 여기에서 미쓰이상사의 주요한 무역 정보와 협상, 거래 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머무른 기록도 있다.
지금도 건물과 시설들이 잘 보존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4. 삼의루
모지항에 있는 요정이다.
1906년 당시 모지항이 번성하여 이런 요정들이 7개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에서 매입해서 관리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5. 하기도자기자료관
하기도자기의 기원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위 "도자기전쟁"이라고도

불리는 16세기말 조선에 출병한 모리데루모도 무장에게 붙들려온

조선 도공이었던 이경, 이작광 형제에 의해 시작된다.

1604년 이들 이작광, 이경 형제로 하여금 어용도를 만들게 한다.

어용도는 사기장이 빚고 싶은 도자기를 빚는 것이 아니라 다이묘가

시키는대로 도자기를 빚는 것을 뜻한다.

그로부터 조선 도공의 기술과 조선풍의 맛을 계승케 하여 지금까지

400여년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도자기는 고가로 거래되었다. 

하기도자기자료관에 전시된 도자기는 밑에 삼각형 공간이 있었다.
주로 소비층이 영주나 귀족 사무라이들이다 보니 판로가 제한되어 

계층 제한을 풀려고 흠이 있는 것처럼 보여 낮은 가격에 보급하려고 등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6. 하기박물관
하기의 자연, 역사,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으로 호리우치 전통적

건조물군보존지역에 위치한 하기박물관은 2004년에 개관했으며

자연과학, 역사, 설화, 산업, 예술과 공예품에 관한 서류와 물품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건물 자체도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의 일부로서 녹슨 은색의

타일지붕과 나마코카베(하얀 회반죽의 돌출된 연결부가 있는 검고 평평한

마름모꼴의 타일로 만들어진 벽)를 갖춘 예술적 건물이다.

박물간 내부에는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 일부 있었다.

6. 하기성터
하기성 성벽은 한때 모리 가문의 지배하에 에도시대(1603~1867) 동안

조슈번의  수도 역할을 했던 하기의 위세를 보여주는 곳으로,

하기 성터는 깊이 있는 역사를 간직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모리 데루모토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후 히로시마에서 하기로 쫓겨와

1604년 새로운 성을 건설하였으며, 그 성 주위에 하기성 마을이 형성되었고,

하기 성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하기성 마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일본성은 영주나 번주가 자신의 가족과 가신들을 지키기 위해 크고 견고하게

만든다. 성은 막부를 상징한다. 나중에 성주는 막부를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성을 헐어버린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터인 하기성터를 보았다.
결단과 결기는 이런 것이다.
이런 영주 밑에서 일본근대화를 태동시킨 요시다 쇼인이 나온 것이다.

내일은 3.1절이고, 
드디어 정한론을 펼치며 한일합방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고 

일본 메이지유신의 심장이라 할수 있는 요시다쇼인신사와 

쇼인 이토 히로부미 생가를 간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월 26~27일 이틀간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에서 기금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 결산실무> 교육을 마치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3박4일 일정의 일본 후쿠오카 인문학기행을 떠났다.

이번 기행에 고려대 신창호교수님께서 함께 하여 자세한 헤설을 해주셨다.

신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일본 인문학기행 1일차(20240228)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교육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일본 후쿠오카로

인문학기행을 왔다. 오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오늘 새벽 두시 30분까지

모 공동근로복지기금 해산컨설팅 자료르 작성해주고 퇴근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충 짐을 꾸려놓고 두 시간 수면을 취한 후 일어나 바로

택시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집결시간과 장소가 07시 10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F카운터여서 새벽 5시 48분에 집에서 택시를 예약하여 출발하니

여유있게 06:48분에 공항 입구에 도착했다.

06시를 넘기면 출근시간이 시작되므로 12분 차이가 도착시간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2월 28일 소화한 일정은 백제와 나라시대의 역사탐방이었다.

 

1. 백제인의 토목기술로  쌓아올린 수성터와 수성관.
우리나라에는 산성, 토성, 석성이 있는데 물로 만든 수성은 처음 본다. 

백제 멸망 후 나당연합군의 보복 공격이 두려워 나당연합군이 상륙하여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해 백제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만든 수공전략책이다.
이후 고려군과 몽고군이 왔을 때 사용할뻔 했는데 조용히 물러가는 

바람에 실전에서는 단 한번도 사용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물을 끌어올려 이송하고 보관해두었던 나무관들이 발굴되고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2. 고대 큐슈의 정치외교의 중심 다자이후정청 유적 탐방
1300년 전 큐슈 전체를 다스리는 '다자이후(大宰府)'라는 커다란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 동안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주춧돌과 각종 기록들을 보면 큰 규모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큐슈국립박물관 탐방
큐슈와 혼슈로 이어지는 모지항으로 이동해 큐슈국립박물관을 입장해서

탐방을 이어가다.

2005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도쿄, 교또, 나라에 이어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이다. 수천년 전부터 동북아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는

후코오카답게 박물관의 테마는 "일본 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적 관점에서

파악한다"이다.

일본의 수십 점의 국보, 중요 문화재와 총 800여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저녁식사는 백제라는 이름의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한식집이었다.

숙박은 모지항에 위치한 프리미엄 모지항호텔이다.
바로 앞에 바닷물이 보이는 뷰가 뛰어난 호텔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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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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