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의 젊은 나이에 영어 초급 수강생들만 가르쳐서 연간 30억의 매출을 내는 강사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대형학원에 전혀 몸담은 적 없는 강사로는 전무후무하다.(중략)
학창시절 반 50명 중 40등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아이였던 그는 온 가족이 중학교를 마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됐다. “하와유” “하이” 밖에 몰랐던 그에게 캐나다 퀸스 앨리자베스 학교 학생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니” “한국에 맥도날드는 있어? 라고 질문했다. 뭐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답답함, 숨막힘에 전혀 기초가 없던 그는 가슴을 앓아야만 했다.
언어라는 높은 장벽에 막혀 친구들과 운동을 같이 해도 운동 후 식당에 들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밥을 못 먹었고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와 집에서 밥을 먹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외톨이었던 그가 생존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학교 정규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ESL 언어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ESL 과정을 수료하는데 1-2년이 걸린다. 이시원 강사는 독을 품고 공부했다. 새벽이 맞도록 단어를 외웠다. 오로지 영어만 생각했다. 결국 ESL과정을 3개월 만에 수료했다. 퀸즈 앨리자베스 학교 역사상 최단기였다. 독학으로 3개월 만에 일상적인 대화소통과 정규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지인이 운영하던 영어학원의 강사 일을 잠깐 하기로 했다. 첫날 수업 때 그의 수업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다음달부터는 교재도 없이 하는 수업이 였음에도 이시원 강사가 하는 기초 강의는 100% 만원이었다. 없던 수업도 이시원 강사의 이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중략)
강의를 하며 그가 느낀 것은 ‘아무리 기초가 없어도 몇 개월을 투자 하면 원어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이었다.” 는 것 이였다. 그런 이시원식 영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더욱더 사명감을 가지고 영어를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임을 느끼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100만원을 들고 온라인 학원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디자인을 배워나가면서, 조명도 없는 책상에서 그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 언제든 볼 수 있게 한 곳이 지금의 30억 매출의 시원스쿨이 되었다.(중략)
많이 알려진 시원스쿨을 보며 옛 친구들은 꼴찌 하던 네가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꼴찌였기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는 요즘 부쩍 늘고 있는 시원스쿨 아류 사이트들이 생겨나는 점에 대해 자신 있다고 말한다. 꼴찌를 해보지 않은 강사는 절대로 수강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자신만의 수 만 명을 열광시킨 강의법과 열정은 베끼려 해도 베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매일경제 2009.6.16. >
아무리해도 안된다고,
나는 안된다고,
1등은 불가능하다고,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나 자신을, 삶을 포기하지 말자.
오히려 내가 죽을 각오로
계획을 세우고 죽을만큼 노력이나 해 보았는지 되돌아보자.
노력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분명 기회는 찿아온다.
"아무리 기초가 없어도 몇 개월을 투자 하면 원어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이었다"
"꼴찌를 해보지 않은 강사는 절대로 수강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신만의 강의법과
열정은 베낄 수 없다"는 이시은 강사의 열정과 도전감에 박수를 보낸다.
카페지기 김승훈
학창시절 반 50명 중 40등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아이였던 그는 온 가족이 중학교를 마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됐다. “하와유” “하이” 밖에 몰랐던 그에게 캐나다 퀸스 앨리자베스 학교 학생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니” “한국에 맥도날드는 있어? 라고 질문했다. 뭐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답답함, 숨막힘에 전혀 기초가 없던 그는 가슴을 앓아야만 했다.
언어라는 높은 장벽에 막혀 친구들과 운동을 같이 해도 운동 후 식당에 들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밥을 못 먹었고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와 집에서 밥을 먹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외톨이었던 그가 생존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학교 정규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ESL 언어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ESL 과정을 수료하는데 1-2년이 걸린다. 이시원 강사는 독을 품고 공부했다. 새벽이 맞도록 단어를 외웠다. 오로지 영어만 생각했다. 결국 ESL과정을 3개월 만에 수료했다. 퀸즈 앨리자베스 학교 역사상 최단기였다. 독학으로 3개월 만에 일상적인 대화소통과 정규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지인이 운영하던 영어학원의 강사 일을 잠깐 하기로 했다. 첫날 수업 때 그의 수업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다음달부터는 교재도 없이 하는 수업이 였음에도 이시원 강사가 하는 기초 강의는 100% 만원이었다. 없던 수업도 이시원 강사의 이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중략)
강의를 하며 그가 느낀 것은 ‘아무리 기초가 없어도 몇 개월을 투자 하면 원어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이었다.” 는 것 이였다. 그런 이시원식 영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더욱더 사명감을 가지고 영어를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임을 느끼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100만원을 들고 온라인 학원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디자인을 배워나가면서, 조명도 없는 책상에서 그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 언제든 볼 수 있게 한 곳이 지금의 30억 매출의 시원스쿨이 되었다.(중략)
많이 알려진 시원스쿨을 보며 옛 친구들은 꼴찌 하던 네가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꼴찌였기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는 요즘 부쩍 늘고 있는 시원스쿨 아류 사이트들이 생겨나는 점에 대해 자신 있다고 말한다. 꼴찌를 해보지 않은 강사는 절대로 수강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자신만의 수 만 명을 열광시킨 강의법과 열정은 베끼려 해도 베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매일경제 2009.6.16. >
아무리해도 안된다고,
나는 안된다고,
1등은 불가능하다고,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나 자신을, 삶을 포기하지 말자.
오히려 내가 죽을 각오로
계획을 세우고 죽을만큼 노력이나 해 보았는지 되돌아보자.
노력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분명 기회는 찿아온다.
"아무리 기초가 없어도 몇 개월을 투자 하면 원어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이었다"
"꼴찌를 해보지 않은 강사는 절대로 수강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신만의 강의법과
열정은 베낄 수 없다"는 이시은 강사의 열정과 도전감에 박수를 보낸다.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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