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요에 따라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살아 숨 쉬는 기업’으로 회생할 수 있다.” (피에히 전 폭스바겐 회장)
어느덧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토요타를 목전까지 추격하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이지만 시련의 세월도 길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은 판매가 급감하고 20억 마르크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93년에 취임해 2002년까지 폭스바겐을 이끌면서 생산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유연성 제고에 사활을 걸었다.
단기 대응보다는 근본적 원인을 치유하는 폭스바겐의 시스템 혁신은 오늘날 전사적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는 마틴 빈터콘 회장에 이르기까지 16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력은 생산 및 마케팅 혁신, 안정적 노사관계 등으로 고비용 구조를 밑바닥부터 뜯어 고친데 있다.
이런 면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은 신속하고 근본적인 위기대응을 미뤘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략)
GM의 위기는 위기의식을 제대로 갖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80년대 일본 메이커들의 공략에 자구노력이 아닌 통상압력과 엔고정책 등 정부 정책에 기댔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이 역설적으로 일본기업들의 미국 현지생산을 이끌어내는 동안에도 GM은 소비자의 수요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임금과 복지만 늘렸다.
차량 1대당 노동비용이 3289달러로 일본 경쟁업체들보다 1400달러까지 높아지고 공장은 혼류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등 생산 경쟁력은 날로 낮아졌다.
위기대응이 늦어지고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될수록 이윤이 높은 중·대형차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지난해 이미 미국시장 소형차 비중이 20.6%에 달했지만 GM의 소형차 판매비중은 11%에 그쳤다.(중략)
폭스바겐의 위기 극복 전략은 생산 프로세스, 제품마케팅, 노사관계 등에서의 시스템 혁신이었다.
생산혁신은 플랫폼 공용화를 통한 비용절감이 핵심이다. 개발비와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93년 16개던 플랫폼 수를 10개로 줄이고 플랫폼 당 모델 수는 늘렸다. 2000년에는 플랫폼 당 모델 수가 10개를 넘어 경쟁사들의 3배 이상에 달했고 2006년에는 플랫폼 당 판매대수가 51만 대로 토요타(44만 대), 혼다(33만 대) 등을 압도했다.(중략) 또 폭스바겐은 시장 개척과 제품 공략 면에서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발 빠르게 개척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총 4개 브랜드 군으로 나눠 모델과 목표 시장도 차별화했다. 아울러 2000년대 중반 신 모델 투입 지연으로 중국시장에서 판매가 주춤하자 플랫폼 공용화의 성과를 활용해 다양한 파생 차종을 집중 출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중국 진출 이후 최다 판매량인 102만 대를 달성했다.
이런 폭스바겐의 혁신적 생산 판매의 유연화는 무엇보다 안정적 노사관계가 바탕이 됐다. 90년대 초반부터 수요 변동에 따른 유연한 생산 체제를 구축해 노조는 감원 대신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을 보장받고 회사는 인건비를 줄였다. 이후 근로시간 계좌제(감산 때 남는 근로시간을 호황 때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해 확대하면서 회사는 생산량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고 직원은 안정된 임금을 보장받게 됐다.
<머니투데이 2009.6.8.>
세계자동차시장에서 가장 극명한 대조는 GM과 폭스바겐이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세계 자동차기업 1위였던 GM은 시대변화를 읽고, 받아들이고 변신하지 못해 파산이라는 불운한 운명을 맞은 반면 폭스바겐은 변화를 읽고 받아들이고 변신하여 어느덧 글로벌 톱인 도요타자동차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세계 자동차업계를 보면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그리고 갈수록 그 변화가 빨라지고 있고 정신 바짝 차려 대응하고 변신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존의 밀려나고 만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변신의 과정은 순탄치 않고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 그리고 당면하는 문제는 기존의 방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유연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 폭스바겐의 성공전략은 플랫폼 공유전략, 상생의 노사관리, 근로시간 계좌제를 통해 안정된 성장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승훈
어느덧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토요타를 목전까지 추격하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이지만 시련의 세월도 길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은 판매가 급감하고 20억 마르크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93년에 취임해 2002년까지 폭스바겐을 이끌면서 생산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유연성 제고에 사활을 걸었다.
단기 대응보다는 근본적 원인을 치유하는 폭스바겐의 시스템 혁신은 오늘날 전사적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는 마틴 빈터콘 회장에 이르기까지 16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력은 생산 및 마케팅 혁신, 안정적 노사관계 등으로 고비용 구조를 밑바닥부터 뜯어 고친데 있다.
이런 면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은 신속하고 근본적인 위기대응을 미뤘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략)
GM의 위기는 위기의식을 제대로 갖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80년대 일본 메이커들의 공략에 자구노력이 아닌 통상압력과 엔고정책 등 정부 정책에 기댔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이 역설적으로 일본기업들의 미국 현지생산을 이끌어내는 동안에도 GM은 소비자의 수요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임금과 복지만 늘렸다.
차량 1대당 노동비용이 3289달러로 일본 경쟁업체들보다 1400달러까지 높아지고 공장은 혼류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등 생산 경쟁력은 날로 낮아졌다.
위기대응이 늦어지고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될수록 이윤이 높은 중·대형차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지난해 이미 미국시장 소형차 비중이 20.6%에 달했지만 GM의 소형차 판매비중은 11%에 그쳤다.(중략)
폭스바겐의 위기 극복 전략은 생산 프로세스, 제품마케팅, 노사관계 등에서의 시스템 혁신이었다.
생산혁신은 플랫폼 공용화를 통한 비용절감이 핵심이다. 개발비와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93년 16개던 플랫폼 수를 10개로 줄이고 플랫폼 당 모델 수는 늘렸다. 2000년에는 플랫폼 당 모델 수가 10개를 넘어 경쟁사들의 3배 이상에 달했고 2006년에는 플랫폼 당 판매대수가 51만 대로 토요타(44만 대), 혼다(33만 대) 등을 압도했다.(중략) 또 폭스바겐은 시장 개척과 제품 공략 면에서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발 빠르게 개척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총 4개 브랜드 군으로 나눠 모델과 목표 시장도 차별화했다. 아울러 2000년대 중반 신 모델 투입 지연으로 중국시장에서 판매가 주춤하자 플랫폼 공용화의 성과를 활용해 다양한 파생 차종을 집중 출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중국 진출 이후 최다 판매량인 102만 대를 달성했다.
이런 폭스바겐의 혁신적 생산 판매의 유연화는 무엇보다 안정적 노사관계가 바탕이 됐다. 90년대 초반부터 수요 변동에 따른 유연한 생산 체제를 구축해 노조는 감원 대신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을 보장받고 회사는 인건비를 줄였다. 이후 근로시간 계좌제(감산 때 남는 근로시간을 호황 때 사용하는 제도)를 도입해 확대하면서 회사는 생산량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고 직원은 안정된 임금을 보장받게 됐다.
<머니투데이 2009.6.8.>
세계자동차시장에서 가장 극명한 대조는 GM과 폭스바겐이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세계 자동차기업 1위였던 GM은 시대변화를 읽고, 받아들이고 변신하지 못해 파산이라는 불운한 운명을 맞은 반면 폭스바겐은 변화를 읽고 받아들이고 변신하여 어느덧 글로벌 톱인 도요타자동차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세계 자동차업계를 보면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그리고 갈수록 그 변화가 빨라지고 있고 정신 바짝 차려 대응하고 변신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존의 밀려나고 만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변신의 과정은 순탄치 않고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 그리고 당면하는 문제는 기존의 방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유연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 폭스바겐의 성공전략은 플랫폼 공유전략, 상생의 노사관리, 근로시간 계좌제를 통해 안정된 성장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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