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영화 한편 볼까?"
"갑자기 왠 영화?"
"SUV 윤병섭교수님이 숙제를 주셨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5월말 안으로 와이프분과 영화 한편 보고 티켓을 제출하라고..."
"피식~ 그러면 그렇지 당신 머리에서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이 나왔을까?"
"아냐~ 나도 당신과 손을 꼭 잡고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고~"
"정말?"
"그럼~ 우리 무슨 영화볼까?"
"은교?"
"인이가 그러는데 저번 주에 그 영화를 보았는데 보고 나서 울었다저아두라구요.~~"
"사람들 말로는 노인의 욕망을 다루면서 벗는 야한 영화라던데?"
"인이는 슬펐데요"
"그럼, 은교 라는 영화를 보기로 봅시다"
SUV대학원 수업을 한시간정도 일찍 마치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자리가 없단다. 큰애를 통해 알아보고 예매한 곳이 영등포 롯데시네마 심야 11시 15분 타임이 있다기에 예매를 했다. 처음으로 보는 아내와의 영화감상.
둘이서 손을 잡고 심야영화를 보기 위해 영등포로 밤마실을 나갔다.
열일곱 나이의 은교라는 소녀의 청순함과 싱그러운 젊음, 관능에 매혹 당한 위대한 시인 이적요(박해일 분), 그리고 본인은 정작 실력도 없으면서 스승 이적요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하고 스승이 대신 써준 소설로 등단하고 급기야는 스승이 보관해둔 원고를 몰래 도용해서 기고해 이상문학상까지 거머쥐면서 성공에 눈이 먼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그는 은교의 관능을 탐해 스승의 서재에서 정사까지 벌인다), 그리고 위대한 시인의 세계를 동경하며 이적요에게 접근하는 싱그러운 관능미를 지닌 열일곱 소녀 은교(김고은 분) 셋이서 벌이는 욕망의 세계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느낀 사항은 대충 네가지를 정리해보면,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에 대한 열정과 욕망이 있다. 세상사람 모두가 아무리 고매하고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을 해도 사람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은 탓할 사항도 아니다. 다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적절히 절제하고 승화시키며 사는 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10년도 훨씬 전에 읽은 어느 불교 경전의 글이 생각난다. 석가모니 생전에 제자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스승님도 젊은 여자를 보면 욕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나도 인간인데 어찌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겠느냐?"
"스승님은 어찌 이를 다스리십니까?
"50년 뒤 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쭈굴쭈굴한 노파가 되어 있거나 백골이 되어있지 않겠느냐? 그런 백골에서도 과연 욕정을 느낄 수 있겠는가?"
둘째는 표절에 대한 결말이다. 서지우는 스스로 이적요가 써준 '심장'이라는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또 우연히 스승의 저재에서 본 '은교' 글을 보고 (표절도 아닌 100% 도용하여) 문학동네에 기고하여 이상문학상까지 거머쥐지만 이는 사상누각,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아이디어 도용이나 기밀유출, 논문표절도 일시적으로는 영화를 누리겠지만 비밀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과 결과만 중시하여 과정에서의 비굴함이나 정직하지 못함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 것 같다.
셋째는 뭔가 부족한 5%이다. 초반부에 관객들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이적요 시인의 나신이 그대로 노출시킨 점(노인이지만 아직도 육체적으로는 쓸만하다는 것을 정지우 감독이 강조하려고 의도한 것이었을까? 이는 뒤이어 은교와의 신체접촉과 성적상상으로 전개되어진다), 또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장면이다. 서지우는 분명 이적요의 생일을 축하하러 왔다가 스승이 써놓았던 소설 은교의 무단 도용으로 갈등을 빚고 그날밤 만취 상태였었는데, 급작스런 성적접촉은 셋의 갈등을 절정으로 만들기 위한 너무 빠른 전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장면이 마치 끼어맞추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넷째는 은교의 이미지 설정에 대한 배반이다. 은교가 이적요 생일날 서지우와 정사를 나누면서 한 말이다.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지 알아요? 외로워서요" 오잉? 이 대사가 과연 18살 여고생이 할 수 있는 말일까? 여지껏 은교를 청순함으로 포장을 했었는데, 은교는 성적접촉이 서지우가 처음이었는데 성관계가 많은 여자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이런 대사를??? 이 말로 은교에 대한 청순함이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문화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데... 그럼 여고생들은 외로우면 다들 남자랑 자도 된다는 건가? 이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일까 네티즌관객의 평도 1점(보고나와 토할뻔 했음. 다 역겨워.../ 이게 뭔가요... 단체로 야동 관람한 느낌. 작품성? 풉. 은교는 꽃뱀역할인가?ㅎㅎ)에서부터 10점(미치도록 웃긴 장면도 있고 전체적으로 나에겐 슬픈 영화 /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감정묘사와 아름다운 화면 구성 뛰어난 연기력 모두 갖춘 영화인데 노출만 이슈가 되어 아쉬워요)까지 다양하고 전체평점은 7.08점(3,328명 대상)
마지막으로 영화 은교에 나오는 여운이 있는 명대사를 살펴보면,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껍데기 작가 서지우의 이상문학상 시상식에 나타난 이적요가 제자에게 내비친 대사.. )
"잘 가라, 은교야"(이적요가 은교를 떠나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한 마디)
관람후 신새벽길을 걸으며 아내와 함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오뎅으로 요기를 했다.
아직은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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