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먼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앙드레 프레빈)와 협연 직전, 연주를 취소했다. 비상이 걸린 교향악단은 3년전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19세의 나이로 1위를 차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를 긴급 섭외했다. 젊고 가날픈 아시아 여성 연주자가 리허설 무대에 올라오자, 단원들은 골려 줄 심산으로 당초 예정돼 있던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대신 갑자기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은 두어 소절만에 바이올린이 따라나와야 하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죠. 단원들의 짖궂은 장난이었지만 100번은 연습해왔던대로 반사적으로 연주에 들어갔어요"
이 연주회가 런던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계적 명문 음반사인 데카(Decca)에서는 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전보를 보냈다. 결국 한 달 뒤인 6월, 같은 악단.같은 지휘자와 함께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데뷔 음반까지 녹음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탄 연주자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에 잠시 내렸던 3시간 동안에도 공항 사무실에서 연습에 임했다. 아시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정경화神話'의 시작이었다.(중략)  

"당시에는(1973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첫 협연무대에서 명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연주) 조금이라도 내 연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끝난 뒤 복도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고함을 치곤 했다. 그 모습을 보던 거장 줄리니가 다가와 '때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따뜻하게 조언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줄리니의 속도는 통상적인 빠르기보다 훨씬 느렸지만, 지금 들어도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경험이었다."

"적당히 편안히 하거나 타협해서는 결코 살아있는 연주가 나올 수 없다. 연주자는 홀로 씨름하면서 울고 웃어야 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언제나 무대에서 쓰러져서 나온다는 각오로 올라갔다. 100번이 아니라, 1만번을 태어나도 다시 하고 깊을 만큼, 바이올린은 여전히 신비롭고 아음다운 벗이다."(후략)

- 조선일보 김상현기자 2009.8.20

어제 모처럼 시간이 나서 수북히쌓여있는 지난 신문을 들추어 스크랩을 하다가 부상을 딛고 4년만에 활동을 재개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님에 대한 기사를 읽고 너무 감동이 컸다. 마치 연말을 맞아 정신이 해이해진 나를 꾸짖기 위해 준비한 기사 같았다. 조선일보 김성현 기사 블로그를 들어가 기사를 다운받으려 해도 공교롭게도 이 기사는 없었다. 수고스럽지만 벅찬 감동을 안고 하나하나 독수리타법으로 문장을 직접 입력할 수 밖에.....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정졍화와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한 뒤 "그녀는 정말 완벽주의자다. 나는 만족스러웠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었고 수없이 고쳐나갔다. 그 결과는 놀랍기만 했다."고 경탄했다고 한다.

남들은 그만하면 됐다고 경탄하고 실력을 인정하는데도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노력이 지금의 정경화님 명성을 이루게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만번을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다시 하고 싶다는 바이올린에 대한 큰 사랑앞에서 진정한 예인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평소에 이렇게 다져진 피나는 연습과 노력이 정말 우연히 찿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면 신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나도 수만번을 다시 태어나도 내가 걸어왔던 삶과 사내근로복지기금업무를 사랑하리라.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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