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즈음 내 짝과 나는 일을 보고 오느라 귀가를 오후 8시경에 하게 되었다. 매일 집에서 하교시간에 맞춰 간식을 주어 학원 가는 것을 챙긴다.(아직도 챙겨줘야 하니 답답할 노릇이고 조금은 창피한 일...ㅠ)
그날은 마침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어서 집에 오면 하라고 아침 식사시간에 이것저것 얘기를 해주고 나갔었다. 하교 후 걸려온 전화....
"저요! 이번 중간고사 전교등수가 무지 올랐는데요. 계산기 어디 있나요?"
재명이가 아주 다급하고 들뜬 목소리로 소리친다.
"계산기는 왜?"
"정확하게 다시 계산해보려구요!"
"아빠 책상 위에 있을게다. 쓰고 제 자리에 두거라!"
좀 있다 다시 막내 재윤이도 전화가 온다. 둘이 이번 시험에서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어 내심 기뻐하고 있던 터였는데, 기특하기도 하고 솔직히 자식이 시험 잘 보고 왔다는데 그것도 성적이 많이 올라 등수도 더 올랐다는 말에 뛸듯이 기뻤다. 일을 보는 중간 중간에 입가에 미소가 슬며서 흐르는 것이 꽤 기분이 업 되었다. 아마 내짝도 내가 슬쩍 귀뜸해 준 걸 듣고 내심 나보다 더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집에 도착할거니까 너희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니 엄마아빠도 아주 흡족하구나, 오늘은 엄마아빠는 밖에서 저녁을 먹었으니 가서 치킨이라도 시켜주마, 한문숙제 해두고 있거라!"
집에 도착하니 위풍당당한 두 녀석은 집에 마련해뒀던 간식은 손도 안대고 치킨 먹을 생각에 쭈~욱 기다리고 있었단다. 배가 고플 때 먹어야 치킨이 제 맛이고 꿀맛이라나.... 맛은 어찌나 잘아는지....ㅎ
얼른 지갑을 꺼냈다. 내짝도 나도 현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치킨을 살 만큼 남아있지 않아서 선뜻 카드를 주었다.
"이 카드는 생활비가 들어있는 것이니 치킨을 사면 곧장 집으로 오너라. 어지간하면 내가 나가서 현금을 찾아서 주겠건만 오늘은 일을 보느라 엄마아빠가 무지 피곤하니 너희 둘이서 가서 치킨을 사고 조심해서 챙겨오너라 믿어도 되겠지?"
"네! 걱정마셔요. 저희를 그렇게 못믿으시나요?"
뜨끔했다. 자식을 못믿는 어미의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평소에 믿음을 덜 준 녀석들을 행동 탓이기도 하지만.....ㅎ
치킨 집으로 간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올 생각이 없나보다. 이상하네~ 우리 동네 치킨 집을 초벌로 튀겨놓았다가 주문하면 곧장 다시 바짝 튀겨주는 거라 거의 5분 안에 끝나건만.... 무슨 사단이 난게 틀림이 없다. 학교 앞이나 가게 입구에서 학생들이 사복을 입고서 학년에 관계없이 이래저래 돈을 뜯는다는 얘기들을 들은 바가 있은지라... 살살 걱정이 되어 나가보기로 했다.
치킨집 여사장의 말에 따르면 15분 후에 오겠다며 어디로 둘이서 가더라고 일러준다. 눈을 들어 맞은 편을 보니 간판이 PC게임방이다. 어이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 냅다 그 PC방으로 달려갔다.
지하에 새로 생긴 아주 넓은 곳이라 일일이 어두운 불빛에서 녀석들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저기 저 구석에... 눈에 익은 두 녀석....씩~~~씨~~~ㄲ 난 화가 나기 시작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려 한다. 그런 줄도 모르는 두 녀석은 화려한 잠깐의 외출로 아주 신이 나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너희 둘 다 일어나!"
"..............."
"따라와!"
"..............."
말없이 집으로 따라왔다. 물론 치킨을 찾지 못한채로..... 현금이 없어 카드를 준 나 자신을 속으로 자책해 본다. 잠시 그 틈을 이기지 못하고 또 게임의 유혹이 도졌는지 앞서가는 녀석들의 뒤꼭지를 보니 한대 후려 쥐어박기라도 하고 싶고..... 혼이 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힘이 빠져서 축 늘어진 채로 저녁을 보냈다. 그렇게 거짓말 하지 않았어도 치킨을 사다 먹고 나면 기특하고 예뻐서 컴을 켜주고 비밀번호도 해제해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그 다음날 누나인 인이가 물었단다.
"너희들 왜 그랬니? 엄마아빠가 얼마나 속상해 하시는지 아니? 어떻게 된거냐?"
라고 물으니 둘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킨을 주문해 놓고 눈을 마주 보고서 냅다 게임을 하러 달려갔다는 것이란다.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자신들도 빨려들어가는 듯 그렇게 행동이 되더란다. 그렇게 엄마가 찾으러 빨리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그때 진짜 간이 오그라들더라나~ 뭐라나~~
어이쿠.....!@ 지끈~지끈 두통이 또 시작이다.
"내 아들들 쌍둥이를 데려간 PC게임아 너 나좀 보자! 너 좀 나와봐 세상밖으루....!!!"
그날 후 나는 아직도 마음이 회복되지 않고 우울하다. 그렇게 여러 수십번을 다짐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거짓말 하고를 반복하고서도 아직도 게임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쌍둥이자식들이 너무도 걱정이다.
"PC게임아! 너 나 좀 살려주는 셈치고, 제발 내 아들들 더 이상 유혹하지 말고 그냥 두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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