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는 우리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재상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종 8년(1426년), 64세 나이에 우의정에 제수된
이래 세종 31년(1449년), 87세까지 무려 23년 동안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성군(聖君) 세종이 남긴 공적의 대부분은 현신(賢臣)
황희와 함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황희는 관후하고 침중하여 재상의 식견과 도량이
있었으며, 풍후한 자질이 크고 훌륭하며 크게 총명하였다.
집을 다스림에 검소하고 기쁨과 노여움을 안색에 나타
내지 않았으며, 일을 의논 할 땐 공명정대하여 원칙을
살리기에 힘썼다."
황희는 평소 거처가 단박하고 성품이 유순하고 너그러
웠던 모양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울부짖고 떼를 쓰거나
말을 함부로 하여도 좀체 꾸짖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염을 뽑고 뺨을 때리는 노비의 자식들에게도
화를 내거나 제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젠가 부하관리들과 함께 집에서 일을 의논하며 붓을
풀어 글을 쓰려 하는데, 여종의 아이가 종이위에 오줌을
쌓았는데도 전혀 노여워하는 낯빛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손으로 오줌을 훔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해는 마당에 심은 복숭아가 제법 먹음직스럽게
익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무더기로 몰려와 마구잡이로
따먹고 있자 황희가 창을 슬쩍 열고는 나직한 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다 따먹지는 말거라. 나도 맛 좀 봐야지---"
하루는 계집종들이 서로 다투어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한 계집종이 공에게 찾아와 하소연 하였습니다.
"아무개 종년이 이러저러한 잘못을 범하였으니, 몹시
간악합니다."
이 말을 들은 황희는~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고 책만 보았다고 합니다.
조금 뒤에 상대방 계집종이 또 와서 똑같은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황희는 또~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였을 뿐 돌아보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황희의 동생이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아무개는 이러하고 아무개는 저러하니, 이러한 년은
옳고 저러한 년은 그른데도 둘 다 옳다고만 하니,
형님의 분명치 못하심이 너무한 것 같습니다." 하였으나,
황희는 또, "네 말도 옳다."고 하고는 글만 계속 읽을 뿐,
옳다 그르다는 말은 끝내 한 마디도 안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성균관 유생들이 모여앉아 황희를 욕하며 흉을
보고 있는데 당사자인 황희가 그 옆을 지나며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황희도 그들에 끼어 맞장구를
치며 그들을 거들었다고 합니다.
유생들이 처음엔 그를 못 알아보았는데 그가 떠난 후
한 사람이 그가 황희인 것을 알게 되어 모두 깜짝 놀랐을
정도라고 합니다.
논어에는~
"군자는 남과 화목[和]하지만 같지[同] 아니하고,
소인은 같으면서도 화목하지 못한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하였고,
또 "군자는 두루 조화를 이루고 힘으로 파당을 형성하지
않고, 소인은 여러 사람의 힘으로 파당을 하지만 두루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君子周而不比 小人比以不周]라는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유무, 진실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내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작금의 치자들이
반드시 새겨 보아야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희정승은 평소에 그렇게 너그러웠으나 누구에게나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 뛰어난 관리로 명망이 높았던 김종서에게는
지나치리만큼 박정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황희가 정승(국무총리)이고, 김종서가 공조판서(장관)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김종서의 잘못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고 하는데 심하게 꾸짖는가 하면
심지어 김종서 대신 그의 노비에게 매질을 하거나 시종을
가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정승 맹사성이 황이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김종서는 당대에 뛰어난 신하인데, 대감은 어찌 그렇게
심하게 그의 허물을 잡는 거요?."
그러자 황희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종서를 아껴서 그런 것입니다. 인물을 만들려는
게지요. 종서는 성품이 곧고 기운이 좋아 일처리를
지나치게 빠르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서가 뒷날 우리 자리를 잇게 될 것인데, 만사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국가 대사를 망칠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미리 그의 기운을 꺾고 경계하여 스스로 뜻을
가다듬고 무게를 유지하여, 혹시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가벼이 처신하지 않도록 하려는 겁니다.
결코 그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외다."
맹사성은 이 말을 듣고 감복했다고 합니다.
훗날 황희가 영의정 자리를 내놓고 물러가기를 청할 때
김종서를 추천하여 자기 자리를 대신하게 했으니 김종서를
아낀다는 그의 말은 사실로 증명이 된 셈입니다.
성훈에~
"인부지물위심원[人不知勿爲心怨] 질타양심불위치
[叱他良心不爲恥]"라는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원망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을 질책할 때는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목을 지켜나가는데 있어 우선 公과 私를 구분
하는 양심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公적으로 서로 입장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公적인 것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그 사람(私)마저 미워하고 원망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을 풍요롭게... (0) | 2010.08.19 |
---|---|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0) | 2010.08.19 |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 (0) | 2010.08.10 |
역경으로 맺는 열매 (0) | 2010.08.09 |
1000억 짜리 강의 (0) | 2010.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