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미인 중의 하나라고 하는 조비연(趙飛燕)과

더불어 미색과 총애를 다투었던 반첩여는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이었습니다.


반첩여의 시 원가행(怨歌行)은 단선시(團扇詩)라고도

하는데 다섯 수로 이루어진 오언고시(五言古詩)로서

자신을 총애하던 성제의 사랑이 점차 조비연에게로

옮겨가면서 쓸쓸해 진 자신의 처지를 여름이 다 지난

가을부채로 비유함으로서 쓸모없게 된 물건이나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인을 풍자하는 추풍지선(秋風

之扇) 또는 추선(秋扇)이라는 어휘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천자문에 나오는 "환선원결(紈扇圓潔): 흰 비단

부채는 둥글고 깨끗하고, 은촉위황(銀燭暐煌): 은빛

촛불은 빛나고 찬란하다." 라고 한 글귀의 출전(出典)

도 이 시라고 합니다.


그럼 반첩여의 단선시부터 보시겠습니다.


원가행(怨歌行) --- 반첩여


新裂齊紈素(신열제환소) 세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이

皎潔如霜雪(교결여상설) 서리나 눈 같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재단해서 합환선을 만드니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고르게 동근 것이 보름달과 같구나.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님의 품과 소매 속에 드나들며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흔들여서 미풍을 일으켰지만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이 다가와

凉飇奪炎熱(양표탈염렬) 산들바람이 더위를 앗아갈까 함이니

棄捐협사中(기연협사중) 대나무 상자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세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애틋한 정이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구나.



이 시는 부채를 통해 버림받은 여인의 원망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의 소재인 부채는 곧 작가

자신으로,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 이입시켰습니다.

전반부에서는 부채의 재질과 모습이 깨끗하고 아름

답다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출생, 성품, 미모를

은유적으로 나타냈고, 이어서 더위를 쫓는 기능을

황제를 위한 자신의 헌신적인 시중으로 비유하였으며,

끝 구절에서는 가을이 되어 필요 없게 된 부채

신세가 되었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첩여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반희(班姬)는 흔이 반첩여(班??) 라고 일컬어지는데,

성이 반이고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첩여는 후궁들에게 주어지는 직첩의 일종이라 하는데

반황(班況)의 딸이자 역사가인 반고(班固)의 고모

할머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생물연대는 BC 48~BC 6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 않고, 어려서 재주가 있었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으며 자라면서 교양이 매우 높고 언행에 절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 성제(成帝)가 즉위한 후 후궁으로 선발되었고

소사(少使), 대행(大幸)을 거쳐 첩여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총명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도 전해지는데

하루는 성제가 궁궐 뒤의 정원을 산책하다가 자기의

수레에 같이 타자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반첩여가 말하기를~


觀古圖書       옛날의 그림을 보오니

聖賢之君       성현이 된 임금은

皆有名臣在側   모두 옆에 명신이 있었는데

三代末主       하,은,주 삼대 말의 임금들은

有嬖女         옆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得無近似之乎   제가 상감과 더불어 수레를 함께

타면 그와 같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제는 반첩여를 매우 총애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사랑이 조비연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이때 성제의 후실인 반첩여가 황후 허씨와 짜고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후궁들을 저주하고,

또 임금에 대한 중상을 했다는 혐의로 하옥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던 조비연

자매가 일을 꾸며 허 황후와 반첩여를 무고하는

옥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후에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의 처지는

그 옛날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때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별궁에 유폐되어 있는 허 황후의

말벗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성제의 허락을 받았고

이후 장신궁(長信宮)에 머물면서 과거 임금의

사랑을 받던 일에서부터 현재 자신의 처지를 생각

하며 자도부(自悼賦), 도소부(悼素賦), 원가행(怨歌行)

등 세 편의 시가를 지었으나 후세에는 겨우 원가행

한 편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지만 훗일 문사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황태후의 말벗을 하면서 호젓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성제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을

돌보는 정절을 보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40여세의 나이로 처연한 일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다 변해버린 남자였지만 무덤까지

지키며 초심을 버리지 않았던 정절의 여인 반첩여~


이에 비해 조비연은 어떤 여인이며 반첩여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혼군(昏君)인 성제는 사방으로 유람을 다녔는데

어느 날 우연히 양아공주(良阿公主)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가녀(歌女) 수 명을 불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하여 성제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 중의 한 여인이 목소리도 곱고 춤추는 자태도

매우 날렵해 보였는데 성제가 환궁한 후에 공주

에게 그 여인을 보내 달라 해서 얻은 여인이 바로

중국 사대미인 중의 하나요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는 일화를 남긴 저 유명한 조비연입니다.


그에게는 자매가 있었는데 언니가 조의주(趙宜主:

조비연의 본명)요, 동생이 조합덕(趙合德)이었습니다.  


조씨 자매는 차례로 성제를 모셨고 성제도 다른

후궁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그들만 총애했고

황후인 허씨도 냉대를 받아 내심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때 조비연이 황후자리를 노리고 황제에게 참소하기

시작했는데 허 황후가 후궁들을 저주하고 황제를

모함했다는 죄명을 씌우고 후궁들도 이에 연루 시켰습니다.


이에 성제는 매우 분노해서 황후의 인수를 회수하고

별궁에 유폐시켜버립니다. 반첩여는 총명하여 황후가

유폐된 장신궁으로 몸을 옮기고 허 황후와 외로움을

나누면서 목숨을 보존하고 시를 지으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성제는 태액지에 큰 배를 띠우고 즐기면서

조비연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시랑인 풍무방에게

생(笙)을 불어 반주를 하게 했습니다.

배가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별안간 광풍이 일어

춤추던 조비연이 바람에 날릴 뻔했습니다.

성제가 황급히 소리쳤고 풍무방이 재빨리 악기를

던지고 조비연의 두 발을 잡았습니다.


평소부터 풍무방을 은근히 좋아했던 조비연은 그 경황

에도 풍무방에게 두 다리를 잡힌 채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

(作掌中舞)하여 비연(飛燕: 나르는 제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명 조의주가 조비연

으로 불리게 되었다네요.)


성제는 비록 음란했지만 나이 40이 넘도록 자식이

없자 후궁들을 기웃거렸고 조씨 자매는 질투심이 많아

이를 심히 경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궁에게서 차례로 아들이 태어

났고 두 후궁과 두 아들은 모두 조씨 자매에 의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으며 황제도 이를 막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했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은 왕망(王莽)에게 정권을 빼앗기어 전한(前漢)은

망하고 잠시나마 신(新)나라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안에는 동요 하나가 유행하였는데

"燕飛來 啄皇孫" 재비가 날아와서 황손을 쪼았다는

뜻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비연자매가 황손을 해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성제는 조합덕의 침상에서 급사했다고 합니다.

조합덕이 성제를 독살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악행으로 인한 보복이 두려워 독주를 마시고 자결하고 맙니다.

조비연은 나중에 황후가 되기도 하였지만 왕망이

정권을 잡자 신분이 계속 하락하여 후에는 서인

(庶人)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그녀도 자결하고

말았으니 자업자득이라 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사랑과 우정을 지킨 여류시인 반첩여의

생은 비록 권세로부터 멀어진 외로운 삶이었지만

천수를 누렸으며 그 외로움으로부터 끌어낸 문인

으로서의 자질을 찾았고 ‘원가행’이라는 참으로

보석 같은 시를 남긴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권력의 욕은 끊임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씀만큼 권력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말씀도 없다고 봅니다.

그 어떤 강한 권력도 결국 끝을 보고야 만다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반첩여가 조비연의 권력싸움에 뛰어 들었거나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임금의 권력을 빌어

호가호위 하는데 취해 버렸더라면...

그녀의 삶에 원가행과 같은 명시는커녕 그녀의

말년도 비극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수연은 비록 진흙을 뚫어 피지만 호수를 지키며

연근을 살찌워 냅니다.

이에 비해 장미는 향과 고운 꽃잎을 자랑하다

꽃병으로 끌려와 요절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런 장미를 두고 굵고 짧은 생을 살았다고

부러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멋진 나무가 궁궐의 대들보로 선택되어 최고 권위의

자리를 지키는 영광을 얻듯 조비연은 미모 하나와

술수로 최고 권력에 접근할 수는 있었지만 선택 받지

못해 산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못생긴 나무들이

저마다 푸르름을 뽐내며 자연과 함께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영광을 그녀는 결코 향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첩여 또한 선택된 잘 생긴 나무였지만 그녀는

술수로 자리 유지에 급급해 하기 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늘 겸헌한 자세를 유지하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풍지선(秋風之扇)의 쓸쓸함을 맛보지 않으려면

스스로 항상 변화에 능동적인어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스스로 먼저 그 변화를 이끌어 가려는 의지...

그것만이 자신의 생을 보다 보람으로 이끌 수 있는

정도라고 믿습니다.

즉,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강제로 변해져야 하는

치욕을 당할 수가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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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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