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대중 전대통령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올해에만 노무현 전직대통령님에
이어 전직 국가 원수 두분을 보내니 마음이 울적합니다. 김대중 전대통령님께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온몸으로 싸우신 분이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19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을 하기 전만해도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이 진실인 줄만 알았습니다.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빨갱이고
불만세력에 간첩인 줄만 알았고, 불편함도 잘 살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고, 언제
북한이 쳐들어 올지 모르니 무조건 반공을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북한에는
붉은청소년근위대가 있다고 우리도 북한이 남침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정규수업시간에 교정에서 교련복을 입고 제식훈련을 배웠고
총검술을 배웠드랬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총학생회가 아닌 학도호국단으로
자동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이런 서슬퍼렀던 군부독재의 최절정기에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1979년 부마사태, 10.29 박대통령 시해사건, 이어 12.12.
군사쿠데타, 5.18광주민주항쟁을 통해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리며 임금을 동결한 근로자들을 달래기 위해 1982년에 당시 유일한
노동자단체인 한국노총의 건의를 받아들여 만든 것이 '사내근로복지기금운영준칙'
이었습니다. 법인화된 기금이 아닌 노동부 예규로 설립된 기금이다보니 나중에
많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나타나 국회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이 1991년 8월에
제정되고 1992년 1월 1일부로 발효가 됩니다. 이때 사내근로복지기금법 발효이전에
'사내근로복지기금운영준칙'에 의거 설립된 기금을 두고 흔히 법인화된 기금과
구별하여 '준칙기금'이라고들 부릅니다.
따라서 1992년 1월 1일 이후 새로이 발효된 사내근로복지기금법에 의거 설립된
사내근로복지기금들은 정관에 '준칙기금'이란 용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좌우지간 1982년 이후 서슬퍼렇던 군부독재시대에 저임과 열악한
근로조건, 부당한 해고나 처우 등에 저항하고 투쟁했던 수많은 선배근로자들의
피땀과 눈물의 댓가로 사내근로복지기금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혜택을 후배들인
지금의 근로자들이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선배들의 투쟁과 저항이 없었더라면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같은 당근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온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이기에 김대중
전대통령님을 보내는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가 앞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생활안정과 근로복지증진을 위해 더 크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김대중 전대통령님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하며,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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