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기까지 했다. 사람은 대부분 감정이 앞서는지라 우선은 전후사정을 살피지도 않고 가방이
찢겨진 데만 촛점을 맞추고 재명이를 나무랐다.
다행히 큰애가 시험이 끝나고 집에 와있어서 재명이를 데리고 안방에 들어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재명이가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는것 같다며 학교를 가기 싫다고 이야기한다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재명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명이가 반에서 1등을
하다보니 학급 아이들이 시기와 질투심을 많이 느끼는지 모둠(분단) 아이 다섯명이 사사건건
재명이를 귀찮게 굴며 발표도 못하게 막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로 불러내어 집단으로 발로 차며
때리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막내인 재윤이도 그제서야 재명이 형이 친구들에게 맞는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제서야 한달전 재명이가 "친구들이 자꾸 저를 괴롭혀요!. 물건을 빼앗고, 때리고, 선생님께 자꾸
하지 않은 일도 고자질하고 그래요. 친구들 때문에 청소도 매일 해요."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책과 노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니 독서록에도 다른 아이 글씨로 "재수없는 자식, 죽어버려"라는
끔직한 욕설이 쓰여져 있었다. 매주 두개씩 쓰던 독서록도 15일째 쓰지 않고 빈칸으로 있었다.
울먹이는 재명이를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집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엄청난 상황을 맞이하다보니 더 암담하고 그동안 혼자 참으로 고통받았을
재명이를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했다.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이 자식이 맞았다고 하자 조폭을 동원하여 산속으로 끌고가 집단 보복을
했다는 보도기사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순간만큼은 피가 솟구치며 이성과
지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러나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가방끈이
칼로 몇군데 찢기고, 잘려져 온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폭력사태인지라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밤 늦게까지 큰애와 해결방법을 이야기하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다 새벽에 일어나 일단은 선생님께 맡기기로 하고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 가방과 독서록을 보시고 특히 재명이를 괴롭힌다는 그
모둠 네명의 아이 이름을 함께 적어 보냈다. 선생님에게 일체를 맡기겠으니 모둠과 반 전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조치하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5월 17일 선생님이 반 아이들 이야기를 모두 듣고 초등학교 4학년 전체 담임 선생님들과
상의한 결과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학원내 폭력사태로 규정하고 모둠 6명 중
재명이를 제외한 다섯명의 학부모들에게 전후 사실을 알리고 가방은 칼로 찢은 아이 집으로
보냈으며, 어제 오후 늦게 그 아이 어머니가 재명이를 데리고 가서 새 가방으로 사서 보냈다고
결과를 담임선생님이 알려왔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칼로 재명이 가방을 찢은 아이 엄마가 나에게 자기 애는 여자같이 순하고
착한데 그럴 리가 없다며 자기 아이 말을 들어보아도 재명이가 원인제공을 더 많이 한 것
같다고 딴소리를 하기에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셨냐고 칼로 찢은 재명이 가방과 독서록에
쓴 당신 집 아이 욕설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바탕 소리를 쳐 주었다.
철없는 애들 일이라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정말 원칙대로 경찰에 학원폭력으로 신고해야
되겠냐고 강하게 나가니 그제서야 잘못했다고 사과한다. 그저 자기 자식 말만 믿고 자기
자식만 감싸기에 급급한 그 아이 엄마의 행태가 너무 얄미웠다.
어제 퇴근무렵 학교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처리결과를 나에게 알려주면서
선생님을 믿고 맡겨주어 고맙다고 하기에, 나도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재명이 모둠도 다른 모둠으로 바꾸어주니 재명이가 새 모둠 친구들이 잘해준다고 이제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말로만 듣던 학원폭력의 피해자에 내 소중한
자식이 그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재명이, 재윤이와 대화가
부족했던 내 잘못이다.
그동안 내 사랑이 부족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앞으로는 보다 사랑으로 감싸며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를 키울 것이다.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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