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을 올리기 전에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아버지, 이번 차례상에 집사람 밥도 함께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2년전 추석차례상에 집사람 밥을 작은아버지댁과 동생집 양쪽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장모님이 많이 속상해 하셨거든요.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하시면서..."
"알았다. 밥 한 그릇만 더 놓으면 되니 그럼 그렇게 하마"


할아버지 제사상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옆 추석차례상에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어머니 밥을 비집고 아내 밥이 나란히 놓여져 있다. 결혼후 17년간을 매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내가 직접 시장을 보며 준비해간 제수용품으로 차례를 올리던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에 이제는 아내 자신의 밥이 놓여져 있다.

제사를 다 지내고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와 여기에 계신 너희 작은아버지들로 보면 쌍둥이엄마는 며느리이고 조카며느리이다. 여기 상에 밥을 올린 할아버지나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는 모두 내 위이고, 네 어머니만 해도 여기 작은아버지들은 큰형수이니 괜찮지만 쌍둥이엄마는 내 아래이다. 동서고금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시숙부와 시숙모 등 윗 어른이 아랫사람 제사상에 절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 동생 병철이에게 차례상에 큰형수 밥을 올리라고 이야기를 한 거였다. 서울로 가거든 네가 장모님께 잘 말씀드려 오해를 풀어드려라"

윗사람이 아랫사람 차례상에 절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적어도 한번쯤은 그동안 고생했던 아내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시댁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동분서주했던 아내였기에 억지라도 부려서 우리집 차례상에 어엿히 아내 밥을 올려주고 싶었고 술을 하지 못하는 아내였지만 술잔을 올리고 싶었다. 음식을 올리는 제기 또한 아내가 결혼후에 직접 사서 보내준 것이었으니 기분이 착잡하다. 당신이 하늘나라에 간지 3년 10개월만에 이제야 우리집 차례상에 당신의 잔을 내가 직접 올립니다. 

그동안 나와 살면서 세 자식 낳고 힘든 가운데에서 시댁 챙기느라 정말 고생 많았소. 하늘나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부님, 어머니과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시오. 쌍둥이자식과 장모님 걱정 말고, 내가 잘 모시고 잘 키울테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장모님을 모시고 일산칼국수를 갔다. 최소한 월 2회 닭칼국수를 드시지 못하면 병이 난다고 하실 정도로 닭칼국수 애호가이시다. 장모님은 음식솜씨가 좋으신데 원래 음식솜씨가 좋은 사람은 남이 해준 음식은 잘 안 먹는다. 내 형편이 어려워 자주 외식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 식구가 어쩌다 외식을 할 때마다 장모님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느라 음식점 선정에 애를 먹는다.

그런데 장모님이 유일하게 잘 가시는 곳, 외식장소로 의견일치가 되는 곳이 닭칼국수로 유명한 일산칼국수이다. 칼국수에 닭고기와 바지락을 넣는데 국물 맛이 괜찮으면서 양도 넉넉하고 또 다른 외식에 비해 저렴하여(1인당 6000원) 자주 이용하게 된다. 

아내 암 진단 이후 5년간 2007년 추석을 제외하고는 추석과 설에 고향을 거의 내려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아버지 암 수술이후 경과도 볼 겸 아버지를 뵈러 내가 추석 때 고향을 내려간다니 혼자서 아내 차례상을 차릴 걱정에 마음이 울적하신가 보다. 큰애도 군입대를 해버리고 쌍둥이들이 있다지만 아직은 심부름이며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를 못하니...

쌍둥이들이 저녁 늦게 수업이 끝난다고 저녁에 먹을 김밥을 만들어 보내주고 오면서 일산칼국수에 외식이나 가자고 말씀드리니 반대하지 않고 나서신다. 오후 5시 30분, 아직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보니 평소 북적이던 칼국수집이 기다리지 않고 입구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가족단위로 외식을 오다보니 어린애들이 많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어린애들, 뛰어다니는 애들, 자식들이 뛰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를 막고 누워있고 넵킨으로 장난을 쳐도 젊은 부모들은 말릴 생각을 않고 있다. 오히려 천방지축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자식들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건 아닌데, 귀한 자식일수록 더 엄하게 키워야 하거늘....

그런데 장모님이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뒤 신발을 벗어놓는 곳을 가리키며 "어머, 저 애들도 쌍둥이인 모양이네"하신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이제 막 두살정도 되어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있는데 체격도 비슷하고 많이 닮았다. 녀석들도 우리 재명이와 재윤이처럼 꼭 닮은 일란성쌍둥이였다. 그런데 녀석들이 남의 신발을 가지고 노니 엄마가 다가와 나를 가리키며 쌍둥이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애들아, 자꾸 이러면 저기 할아버지가 이놈하며 맴매하신다."

헐~~ 나보고 할아버지라니??? 내가 벌써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정도인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이봐요, 젊은 쌍둥이엄마! 나 할아버지 아니라우~'하는 무언의 항변만 내 입가를 맴돌고 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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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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