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예년같으면 나는 고향 진도에서 추석명절을 보냈을 것이다.
추석이 할아버지 기일이기 때문에
매년 어김없이 고향을 가서 고향에서 추석을 보냈다.
큰며느리였던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15개월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인 나를
막내아들과 쌍둥이처럼 키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재혼하시고 내 밑으로 남동생만 넷을 두셨다.
그런데 올해 박사학위를 받고나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아내와 재혼한지 6년째!
아버지도 재혼했고,
나도 재혼한 터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아버지와의 관계,
새어머니와의 관계도 그렇고
내 밑 네 동생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동안 내색을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묻혀계시는 문중 선산의 주인인 마을 친척
숙부되시는 분이 수년전부터 선산 중 일부를 팔고 싶은데
어머니 묘 때문에 팔지를 못한다고 이장을 해가라고
뒤에서 계속 불평을 한다는 소리를 마을 친구를 통해
듣고는 피가 역류하는 듯 했다.
며칠째 잠자리를 뒤척이는데 아내가
눈치를 채고는 단칼에 정리해주었다.
"어머니 묘 당장 이장합시다!
까짓껏 얼마나 든다고 자식된 도리를 외면해요.
아버지가 55년 곁에 두셨으니 이제는 하나뿐인 자식인
당신에게 양보하라고 말씀해보세요.
명윤 엄마가 있는 납골당으로 어머니를 모십시다.
그리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나중에 유언에 맞깁시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사람의 만남은 인연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남자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확률은 로또 1등 당첨확률보다도 훨씬 더 낮다.
아내는 가끔씩 말한다.
"내가 전생에 당신의 엄마였나봐!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이뻐보이고
심지어는 당신의 벗겨진 머리까지도 다 매력으로 보이니....."
서로 다른 남여가 만나 결혼하여 일평생 부부로 살면서
마음이 잘 맞아 평화롭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번 추석명절은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2005년 명윤엄마의 암투병 이후 고향에서 모시던
어머니 제사도 다시 가져오고,
명윤엄마 위령미사도 함께 올렸다.
다섯자식 중 셋이 직장을 다니니 다 함께 모이기도 힘들다.
나와 아내, 그리고 자식 다섯이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주니 행복하다.
가정의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부부의 인연에 감사하고
남편인 남자와 아내인 여자가 뜻을 맞추며
양보하고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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