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성격이 비슷하면 싸우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더 싸우고 싸우면
수습이 힘들다. 집사람 생전에 집사람과 장모님은 성격이 비슷했다.
카리스마가 강했고, 리더십도 있었고 남에게 잘 베풀고, 고집고 쎄고,
혈액형도 O형으로 한마디로 호방한 남자 성격이었다.
반면 나는 A형으로 적극적인 리더형보다는 참모형에 가까웠다. 집사람과
내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일찌감치 승패는 결정되었고 내가 거의 져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집사람과 장모님이 다투면 항상 크게 일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중간에 끼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꽤나 불편했다. 집사람 편을
들자니 장모님이 걸리고, 장모님 편을 들자니 집사람의 불같은 성격에 가만히
있을리는 없고 그러다보니 느는 것은 눈치라고 대충 눈치를 보며 해결이 될
때까지 관망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집사람에게 가장인 남편이 적극적으로
중간에 화해시킬 생각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고, 무책임하고
무심하다고 야단맞고.... 내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 주어야 화해고 뭐고
이루어지는데 무조건 본인 말이 옳다고 우기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의견충돌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집안살림의 주도권 때문이었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맞벌이를 했고 신혼초 1년 4개월을 빼고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계속 살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만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장을
보아왔고 장모님은 그 재료로 반찬을 만드시곤 했는데, 매번 사오는 식재료로
반찬을 만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에는 장모님도 며칠 냉장고에 묵히다보면
그만 유통기한을 넘겨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면 집사람은 "왜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묵혀 먹지도
못하게 만드느냐? 엄마는 살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요?", 그러면 장모님은
"네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그럼 살림은 네가 해라!"하시며 방으로 훽 들어가
버리신다. 회사에서 종일 일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온 집사람이나 종일 당시
어린 큰애를 키우느라 장모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던 터라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곤 했다. 더 진전되면 "아들 밥상은 앉아서 받고,
딸 밥상은 서서 받는다던데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네. 어이구 박복한 내 신세~~"
하며 신세 한탄을 하면 "아니 엄마는 내가 뭘 구박했다고 그러는 거요?"하며
더 감정대립의 골이 깊어지곤 했다.
이론상으로는 어느 한쪽이 참으면 되련만 서로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비슷하여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도 답답하여 내가 집사람에게 한마디 하곤 했다.
"자기가 조금만 참으로 될 것을 장모님을 기어이 이겨야 되겠는가? 그러다
나중에 장모님 먼저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하려고...살아계실 때 맘 편히
사시도록 잘 해드립시다."
집사람을 보낸 후 장모님은 그래도 그때 딸자식과 기싸움을 하며 아웅다웅
다투며 지내던 그때가 그리우신 모양이다. 그러게 사람들은 곧 후회할, 아픔을
남길 말과 행동을 왜 하는걸까? 집사람과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집사람을
먼저 보낸후 살림 일체를 장모님께 맡겨 버렸다. 시장도 함께 가고, 필요한 것은
같이 함께 상의해서 골라 구입한다. 혹시 빠진 것이나 애들 필요한 것은 사시라고
매주 별도로 10만원씩 용돈을 드리며 살림은 전적으로 맡겨버린다.
노인분에게는 일을 맡겨주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고 육체나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노인분들에게는 치매예방을 위해 고스톱을
치라고 일부러 권유하기도 한다. 보다 일찍 역할분담에 충실했던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던들 집사람이 이렇게 일찍 허무함을 남긴체 먼저
가지는 않았을 것을...
싱글대디 김승훈
수습이 힘들다. 집사람 생전에 집사람과 장모님은 성격이 비슷했다.
카리스마가 강했고, 리더십도 있었고 남에게 잘 베풀고, 고집고 쎄고,
혈액형도 O형으로 한마디로 호방한 남자 성격이었다.
반면 나는 A형으로 적극적인 리더형보다는 참모형에 가까웠다. 집사람과
내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일찌감치 승패는 결정되었고 내가 거의 져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집사람과 장모님이 다투면 항상 크게 일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중간에 끼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꽤나 불편했다. 집사람 편을
들자니 장모님이 걸리고, 장모님 편을 들자니 집사람의 불같은 성격에 가만히
있을리는 없고 그러다보니 느는 것은 눈치라고 대충 눈치를 보며 해결이 될
때까지 관망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집사람에게 가장인 남편이 적극적으로
중간에 화해시킬 생각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고, 무책임하고
무심하다고 야단맞고.... 내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 주어야 화해고 뭐고
이루어지는데 무조건 본인 말이 옳다고 우기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의견충돌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집안살림의 주도권 때문이었다.
우리는 신혼 때부터 맞벌이를 했고 신혼초 1년 4개월을 빼고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계속 살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만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장을
보아왔고 장모님은 그 재료로 반찬을 만드시곤 했는데, 매번 사오는 식재료로
반찬을 만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에는 장모님도 며칠 냉장고에 묵히다보면
그만 유통기한을 넘겨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면 집사람은 "왜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묵혀 먹지도
못하게 만드느냐? 엄마는 살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요?", 그러면 장모님은
"네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그럼 살림은 네가 해라!"하시며 방으로 훽 들어가
버리신다. 회사에서 종일 일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온 집사람이나 종일 당시
어린 큰애를 키우느라 장모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던 터라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곤 했다. 더 진전되면 "아들 밥상은 앉아서 받고,
딸 밥상은 서서 받는다던데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네. 어이구 박복한 내 신세~~"
하며 신세 한탄을 하면 "아니 엄마는 내가 뭘 구박했다고 그러는 거요?"하며
더 감정대립의 골이 깊어지곤 했다.
이론상으로는 어느 한쪽이 참으면 되련만 서로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비슷하여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도 답답하여 내가 집사람에게 한마디 하곤 했다.
"자기가 조금만 참으로 될 것을 장모님을 기어이 이겨야 되겠는가? 그러다
나중에 장모님 먼저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하려고...살아계실 때 맘 편히
사시도록 잘 해드립시다."
집사람을 보낸 후 장모님은 그래도 그때 딸자식과 기싸움을 하며 아웅다웅
다투며 지내던 그때가 그리우신 모양이다. 그러게 사람들은 곧 후회할, 아픔을
남길 말과 행동을 왜 하는걸까? 집사람과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집사람을
먼저 보낸후 살림 일체를 장모님께 맡겨 버렸다. 시장도 함께 가고, 필요한 것은
같이 함께 상의해서 골라 구입한다. 혹시 빠진 것이나 애들 필요한 것은 사시라고
매주 별도로 10만원씩 용돈을 드리며 살림은 전적으로 맡겨버린다.
노인분에게는 일을 맡겨주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고 육체나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노인분들에게는 치매예방을 위해 고스톱을
치라고 일부러 권유하기도 한다. 보다 일찍 역할분담에 충실했던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던들 집사람이 이렇게 일찍 허무함을 남긴체 먼저
가지는 않았을 것을...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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