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8일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중 사물놀이 50주년을 맞는 김덕수님과의
인터뷰 기사이다.
"5세에 남사당패를 따라 나섰다 한평생 사물놀이판에서 놀았지요. 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전통예술은 여전히 소외받고 있어요. 열심히 하는데도 자꾸 엇비껴나가는
것 같은게 꼭 엇모리장단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저희보다 클래식 연주자들 출연료가 100배 정도 더 많아요. 우리
것을 지키는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죠. 1982년 콧대 높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은근히 사물놀이를 무시하더군요. 그래도 사물놀이를
알려야겠다는 욕심에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들이 어렸을때 '우리 아버지는 사물놀이 세계총연맹 총재'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은근히 기뻤어요. 자식이 아비를 알아주니 더 바랄게 있나요? 결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행복이죠"
"남사당패는 신을 모시는 예인 집단이에요.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고 보신탕도 못 먹게
했어요. 몸조심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쁜 일을 피해가게 됐어요"
"동포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우리 가락과 춤을 아주 좋아해요. 왜냐, 자연의 소리이기
때문이죠. 괭과리, 징, 장구, 북은 각각 천둥번개, 바람, 비, 구름을 상징해요. 그 울림이
아주 독특하고 에너지가 넘쳐요. 세계의 음악교실에서 우리 신명을 교육하는 게 제
꿈입니다."
"사물놀이로 다듬어진 체력이라 연주를 하면서 재충전이 가능하다. 죽는 날까지
공연을 할 것이다"
"한때 제가 돈을 하도 많이 벌어서 집을 금으로 도배한다고 소문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번돈을 나누는 남사당 전통을 따르고 있어요. 그때는 쌀이나 양초,
실도 똑같이 나눴지요. 저도 월급받고 단원들 월급주고 남은 돈은 교육에 쏟아 부어요"
"거참 과거를 왜 감추는지 모르겠어요. 머슴이면 어떻고 無學이면 어떻습니까?
자기 일이 분명하다면 당당할 수 있어요. 그까짓 대학 졸업장이 대수입니까?
그리고 너무 학벌만 중시하는 사회인식도 바뀌어야 해요."
- 매일경제신문 2007.8.28 사물놀이 50주년 맞는 김덕수 인터뷰 기사 중에서...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정한 藝人의 당당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단국대 요업공학과를 중퇴한 김덕수님은 신명나고 고집스럽게 사물놀이를 밀어붙인
결과 국내 분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치를 알아주는 전통예술의 대명사가 되었고,
고졸 학력으로 재능만으로 즐비한 박사학위자들을 제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가 되었고 2007년 출간된 일본 음악교과서에 1980년대부터
1990년대를 빛낸 세계 음악가로 소개되었다.
그는 사물놀이로 번 돈도 전통예술에 다시 투자한다. 사물놀이 부여교육원, 영암
남도교육원, 양평 악기공방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끼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찌기 발견하고 거기에 시간과 열정을 집중 투자하여 승부를 거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간절히 닮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님처럼 남이 거들떠보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몰입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승화시키는 삶! 참으로 멋지고 당당한
삶이 아닌가? 내가 문화재단을 세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전통예술을
지키는 예인들이 자랑스럽게 인정받고 대접받으면서 무대에 서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우리 뿌리를 소중히 계승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조그만 역할을 하고
싶다.
2008.7.9.
김승훈
인터뷰 기사이다.
"5세에 남사당패를 따라 나섰다 한평생 사물놀이판에서 놀았지요. 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전통예술은 여전히 소외받고 있어요. 열심히 하는데도 자꾸 엇비껴나가는
것 같은게 꼭 엇모리장단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저희보다 클래식 연주자들 출연료가 100배 정도 더 많아요. 우리
것을 지키는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죠. 1982년 콧대 높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은근히 사물놀이를 무시하더군요. 그래도 사물놀이를
알려야겠다는 욕심에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들이 어렸을때 '우리 아버지는 사물놀이 세계총연맹 총재'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은근히 기뻤어요. 자식이 아비를 알아주니 더 바랄게 있나요? 결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행복이죠"
"남사당패는 신을 모시는 예인 집단이에요.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고 보신탕도 못 먹게
했어요. 몸조심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쁜 일을 피해가게 됐어요"
"동포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우리 가락과 춤을 아주 좋아해요. 왜냐, 자연의 소리이기
때문이죠. 괭과리, 징, 장구, 북은 각각 천둥번개, 바람, 비, 구름을 상징해요. 그 울림이
아주 독특하고 에너지가 넘쳐요. 세계의 음악교실에서 우리 신명을 교육하는 게 제
꿈입니다."
"사물놀이로 다듬어진 체력이라 연주를 하면서 재충전이 가능하다. 죽는 날까지
공연을 할 것이다"
"한때 제가 돈을 하도 많이 벌어서 집을 금으로 도배한다고 소문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번돈을 나누는 남사당 전통을 따르고 있어요. 그때는 쌀이나 양초,
실도 똑같이 나눴지요. 저도 월급받고 단원들 월급주고 남은 돈은 교육에 쏟아 부어요"
"거참 과거를 왜 감추는지 모르겠어요. 머슴이면 어떻고 無學이면 어떻습니까?
자기 일이 분명하다면 당당할 수 있어요. 그까짓 대학 졸업장이 대수입니까?
그리고 너무 학벌만 중시하는 사회인식도 바뀌어야 해요."
- 매일경제신문 2007.8.28 사물놀이 50주년 맞는 김덕수 인터뷰 기사 중에서...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정한 藝人의 당당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단국대 요업공학과를 중퇴한 김덕수님은 신명나고 고집스럽게 사물놀이를 밀어붙인
결과 국내 분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치를 알아주는 전통예술의 대명사가 되었고,
고졸 학력으로 재능만으로 즐비한 박사학위자들을 제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가 되었고 2007년 출간된 일본 음악교과서에 1980년대부터
1990년대를 빛낸 세계 음악가로 소개되었다.
그는 사물놀이로 번 돈도 전통예술에 다시 투자한다. 사물놀이 부여교육원, 영암
남도교육원, 양평 악기공방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끼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찌기 발견하고 거기에 시간과 열정을 집중 투자하여 승부를 거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간절히 닮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님처럼 남이 거들떠보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몰입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승화시키는 삶! 참으로 멋지고 당당한
삶이 아닌가? 내가 문화재단을 세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전통예술을
지키는 예인들이 자랑스럽게 인정받고 대접받으면서 무대에 서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우리 뿌리를 소중히 계승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조그만 역할을 하고
싶다.
2008.7.9.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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