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면 집앞 우동가게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대형마트에 장보러 가서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우유 하나 덤으로 사는 재미로 살죠. 호텔에서 비싼 음식 먹거나 밤에 조용한 데 가서 술먹는 일은 거의 없으니 묶어서 싸게 파는 1+1 상품 쇼핑하는 걸 즐겨요. 다만 얼굴이 알려져서 사람 많은 데 가면 조금 불편한 뿐입니다. 하하하"
"매스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어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신경 쓰면서 꾸미고 살았다면 23년간 관계했던 매스컴을 견뎌내지 못했겠죠. 사람들이 굴곡 없는 삶이다 그러는데,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나름 일관되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다만 하루 주어진 24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 열정 갖고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았던 기억만 있네요."
"뭔가를 이루려고 계획하기 보다는 매순간 열심히 살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들이 성큼 다가왔다고 할까요. 현재를 열심히 즐기다 보니 미래가 오던 걸요."
"미래 전망은 아예 보지도 않고 무작정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어음깡이라는 게 기업에 따라 객관적 평가가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담당 직원 마음대로 고무줄 평가를 받더라고요. 누구한테 잘보이려는 건 정말 곤욕이었죠."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지 서글퍼지더라고요. 동기동창들은 의사나 교수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그때 배운 거 다 버리고 그러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할수록 제 자신만 힘들어지더라고요. 남들이 다 위만 보고 갈 때 나라도 가끔 아래를 내려다보자고 생각했죠."
"정상만 바라보면 구름이 가리기도 해서 불안해 지는데, 뒤돌아보면 없는 가운데 이 만큼 왔구나 하고 안심이 되잖아요. 결국 원대한 목표가 사람을 지치게 하더라고요."
"너무 안 풀리면 정처 없이 걸어다녔어요. 서초동 소나무사거리에서 출발해 테헤란로 지나 삼성역까지 걸으면 2시간 반이 걸리죠. 모르고 지갑 두고 나간 날은 다시 걸어서 돌아와야 해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었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 유혹도 매우 컸어요. 수익이 안 나왔으니.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죠. 마침내 법률까지 바뀔 정도로 지금은 그 계약방식이 상식이 됐죠. 눈앞의 돈만 좇다 단기 계약에 의존했으면 지금의 500억 매출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자식문제는) 본인 인생인데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죠. 내가 하도 이래라 저래라 말이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딸이 나한테 물어볼 정도 입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 보면 외부평가가 진짜 자기 실력인 줄 아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자기 본 실력 알고 나면 많이 괴로워 하죠. 외부평가는 롤러코스터 같아요. 몇 번 올라가는가 싶더니 바로 고꾸라지기 일쑤죠. 그래서 저는 외부평가 연연하지 않고, 평가가 아무리 나빠도 내 본 실력만 믿고 살아 왔습니다."
"연구소 차리고 나서는 정신 없이 일만 했어요. 교수되고 나서는 방학이 있었지만 초보 교수가 어디 놀러갈 수 있나요. 학회 등 공무 상으로 해외에 가본 적은 있지만 LA, 런던, 파리 등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아직 못가봤네요."
"초기엔 힘들었지만 10년 정도 지나니까 안 연구소는 벤처기업 중에서도 매우 큰 기업이 됐죠. 하지만 안 연구소는 잘 먹고 잘 사는데 주변 벤처기업은 여전히 어려웠어요. 청년 일자리는 점점 줄고, 도전의식도 약해졌죠."
"사람들이 그런 문제의식 왜 갖고 사냐고 하지만, 혼자서만 잘 살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집 아이라 행복하려면 옆집 아이가 행복해야 하니까요."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아직까지 정책 당국자들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집단입니다. 여러 조언들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20대를 대상으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거나, 카이스트에서 6학기 동안 학생들 가르치면서 실제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어요. 사장 했었으면 못 느꼈을 것들이죠."
"정치라는 게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나와 같은 생각 갖고 있는 사람 만나는 거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교수는 작은 부분이지만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더라고요."
"(지금의 아내는) 카톨릭학생회 봉사활동 가서 만났는데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저랑 같았어요. 또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무조건 시키자는 교육관도 같았어요. 특히 돈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인 거 따지기 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 투자하는 직업관도 똑같았죠."
"장기 계획이란 걸 세워 본 적이 없으니까요. 내 평생 한번도 안정, 보장이란 말이 나를 붙잡은 적은 없어요. 선택의 순간에서 모든 걸 고려했지만 이 둘은 항상 빠져 있었죠. 처음엔 의사만 할줄 알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결정은 혼자 오래 고민해서 내리는 편입니다. 대신 기준은 늘 같았어요. 나에게 더 의미 있고, 내가 계속 열정 갖고 할 수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낳아주신 부모님은 물론 전기생리학 전공 시 존경했던 교수들은 모두 노벨의학상을 받았어요. 90년 중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들에 열광했고, 회사를 차리고 나선 앤디 그로브(인텔 창업자)처럼 성공한 엔지니어 출신 CEO가 되고 싶었죠. 와튼스쿨 다닐 때 레오나드 M. 로디시 교수로 부터 배운 교수법 덕분에 카이스트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잡았어요."
"요즘처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게 중요할 때가 없어요. 20~30대는 혼자 실력으로도 일하지만 40대부터는 인간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나이 들어서 친구 사귀기 힘들다고 하는데 다 옛말 같습니다"
"친화력은 처음에 쉽게 하는 데만 도움이 되지 진정한 관계 유지하는 것은 가치관 등 동질감을 형성하는 거 같아요. 안 연구소 16년 됐는데 지금도 장기근속자는 50명이 넘어요. 친구로 따지면 평생 친구인 거죠."
출처 : 헤럴드경제 2011.7.28. 인터뷰기사에서 발췌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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