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일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배우는 (주)쏙쏙의 《주역》 2024년 1분기 종강기념
주역현장 답사차 동묘와 동대문(흥인지문) 현장투어를 다녀왔다.
고려대 신창호 교수님이 동행하며 해설을 해주셨다.
東廟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다.
동쪽에 있는 관우왕묘라는 뜻이다. 그럼 서관왕묘, 남관왕묘,
북관왕묘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정전에
걸려있는 '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 顯靈昭德義烈武安聖諦廟)라는
고종이 쓴 현판이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다는 것, 동묘에 보관된
다른 지역에 설치된 관우사당(서관왕묘, 남관왕묘, 북관왕묘)을
해체하면서 버려진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인은 공자를 文宣王(文의 王)으로, 관우를 武王으로 추앙하고 있다.
조선이 임진왜란 후 명나라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후
명나라 장수인 만세덕(萬世德)의 압력으로 1599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동묘 건립을 시작하여 1601년 관우사당을 준공하게 된다.
동묘가 건물학적으로, 문화제로 가치있는 것은 명나라와 조선
두 국가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관우사당에 걸려있는 현판
글씨에 명나라와 청나라 유명인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동묘 건물 구조를 보면 外三門, 內三門, 정전이 있다.
조선 한양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유교 경전은
四書三經이다. 四書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고 三經은
시경, 서경, 역경이다. 역경은 곧 주역이다.
조선은 건국하면서 도읍인 한양에 四大門,八大門을
건립했는데 四大門은 동쪽에는 유교 통치이념인 仁을
의미하는興仁之門을, 서쪽에는 義를 상징하는 돈의문(敦義門)을,
남쪽에는 禮를 상징하는 崇禮門을, 북쪽에는 智를 상징하는
홍지문(弘智門)을 건립했는데 홍지문은 후에 숙청문(肅淸門),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변경된다.
그리고 중앙에는 신(信)을 상징하는 종각(普信閣鐘을 걸어둔 곳)을
설치하여 인의예지신을 완성한다.
이를 보면 조선은 주역의 나라였다.
일제에 의해 돈의문(敦義門)과 숙정문(肅靖門)은 헐리게 된다.
숙정문은 그 후에 다시 복원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게
침략을 당해 국토가 유린당하고, 유물들이 헐리고 약탈당한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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