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안찌엿'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모르는데, 너희들이 쓰는 은어인것 같은데 뭔데?"
"'안물어봤어, 찌질아 엿먹어라!'예요"

작년, 쌍둥이들이 중국유학을 가기 전에 한참 두 녀석들이 집안에서 고함을 지르며 싸울때 이 '안찌엿'이란 말을 자주 하더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말을 친구들끼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잘못을 지적하고 나무라면 선생님 면전에서 선생님을 향해 이 '안찌엿'이란 말을 해댄다는 것이다.

"너희도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나무라시면 그런 말을 하니?"
"아뇨~ 어떻게 선생님께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라~ 다른 친구들이 그런다고 너희도 만약 친구들 따라 그런 행동을 한다면 애비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선생님들은 이 말에 대한 의미를 모르니 '나무라니 얘들이 그냥 뭐라고 투덜대는 모양이구나~'하시며 넘어가겠지만 만약 이 말 뜻을 알게된다면 느끼는 자괴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와 더불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체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썽을 부려도 의무교육이다보니 다른 학교로 전학조치가 고작인 우리나라 중학교 교육과정 현실과 무너져가는 공교육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만 갔다.

"아빠 제가 중국유학을 간다면 기술가정선생님이 많이 서운하실 거예요"
"왜?"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잠을 자거나 장난하고, 휴대폰으로 카톡하고 문자메시지를 나누고 동영상을 보느라 수업을 듣지 않아서 저 혼자만 수업을 듣거든요. 선생님이 저 혼자만 보고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제가 유학을 간다면 선생님 수업을 듣는 학생이 이젠 없을텐데...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시고 처음으로 학교에 오신 여자선생님이라 학생들을 제대로 나무라지도 못하시거든요"
"........"

"너희 학교에도 돈을 뜯어가는 학생들이 있니?"
"네, 자주 그래요. 3학년 형들이 교실을 돌며 돈을 빼앗아가요"
"그러면 선생님께 즉시 알리지 그러냐?"
"누군지도 모르고,선생님께 이르면 나중에 그 형들이 보복을 할텐데 어떻게 일러요"
"그렇게 조치를 하지 않으면 계속 그런 짓을 할텐데?"
"그래서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아예 뜯길 돈을 천원씩 넣어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요"
"......"

또 한번은 아내가 학교 앞에서 쌍둥이들이 다니는 중학생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남학생과 여학생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부터, 두발자유화로 머리는 길어 한껏 멋을 부렸고 일부 여학생들은 짧은 교복치마를 입고 있어 걸을 때마다 아슬아슬했다고 했다. 어른인 아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남자 중학생들에게는 더구나 남녀공학에 공반이니 이성으로 어찌 비쳐질까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공부가 될꼬?

언제부터 우리나라 중학교 공교육이 이렇게도 망가지고 교권이 추락되어 선생님이 학생들을 나무라지도 못하고 교내에서 현금갈취와 폭력이 남무하여 부모가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는가? 오히려 나무라는 선생님을 죄인취급하며 달려드는 중학생들....!!! 쌍둥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하는 말을 들으며 나와 아내는 쌍둥이들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안학교를 알아보았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귀족학교가 되어 입학 시에 몇백에서 몇천만원까지의 기부금을 요구하는가 하면 학기당 학비며, 기숙사비를 계산하니 사립대학등록금보다 훨씬  비쌌다.
 
고민고민 끝에 자연스레 근처 교회 여집사님께서 추천하던 정주국제학교로 중국유학의 결심을 굳혔다.
'그래 힘들어도 중국 정주국제학교로 보내자! 기숙공립학교이니 여기보다야 교육여건이 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 : "정말 후회없겠니?"
명 : "네, 가겠습니다"
나 : "윤이 너는?"
윤 : "저도 가겠습니다"
나 : "이번에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괜찮겠니?"
명, 윤 : "알고 있습니다"
나 : "아직 시간이 있으니 마음이 변하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해라"
명, 윤 : "여기보다야 공부하기에는 나을 것 같아요. 그냥 가겠습니다"
나 : "알았다. 결심이 그리 확고하다면 떠나거라"


10월말, 여권과 중국 비자를 만들며 쌍둥이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쌍둥이들과 7개월동안 지긋지긋한 컴게임중독과의 전쟁도 끝나가던 무렵, 아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주변 교회의 어느 집사님의 소개로 중국 정주국제학교를 소개받았다. 우리나라 제주도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중국이라니?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말로만 듣던 유학! 그것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 돈도 돈이지만 처음으로 쌍둥이들을 그것도 너무도 빨리 애비 품안에서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이 두려웠다.

문득, 내가 어릴적 할아버지와 부모 곁을 떠나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이 떠올려졌다. 1970년 3월초, 당시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나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나 처음으로 낯선 진도읍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대학을 마칠때까지 장장 11년간이나 기나긴 자취생활은 하게 되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기밥솥도 없었고, 가스렌지나 냉장도, 선풍기, 에어컨도 전기장판도 없던 시기였다. 취사도 근처 산에 올라가 소나무 잎을 긁어다가 또는 억새풀을 베어다가 만든 땔감으로 해결해야 했다. 근처 우물에서 물을 길러 쌀과 보리를 씻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해먹는데 겨울에는 손이 시려 호호 불며 쌀과 보리를 씻었다. 겨울에는 냉골인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자는데 추우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그나마 중학교 2학년 초에 광주로 전학을 오니 연탄을 피우고 석유곤로로 밥을 해먹을 수 있어 그나마 형편이 나아졌다.

내가 지닌 지금의 강인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열정이 어쩌면 지난 그 힘들었던 시절을 헤쳐오며 몸에 배인 결과물인지 모른다. 고생도 때론 선물이라고 했던가 일찍부터 나는 홀로서기를 통해 나를 관리하며 스스로를 추스리며 경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참고 기다리는 법도 배웠고, 돈의 소중함도 느꼈고, 결국은 내가 내 자신의 주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쌍둥이들이 중학교 2학년이면, 나는 그때 다시 광주로 전학하여 공부하던 때인데....

'자식들이 자라면 언젠가는 내 품에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빨리 왔구나~', '쌍둥이들을 지금 이 상태로 두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일까?', '녀석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10년 이후에 우리나라 인력시장이 어떤 모습일까?'와 우리나라의 무너진 공교육을 고민해보니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래 보내자! 좁은 우리나라에서 아웅다웅하기 보다는 더 큰 중국으로 보내 녀석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꿈을 키워주자! 한 녀석이 아닌 쌍둥이들이니 서로 도우며 힘을 합쳐 잘 이겨내겠지! 

10월 31일 국제정주학교 이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곧바로 쌍둥이들 여권사진을 찍고 여권서류를 준비해서 11월 3일, 여권과 중국비자를 발급받았고 11월 17일 중국 하남성 정주국제학교로 쌍둥이들을 보냈다. 마음이 결정되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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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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