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을 막은 '하이데거'의 '재치'
바이에른의 휴양 도시 베르히테스가덴 광장에서
거리 축제가 열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미처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꼿꼿하게 모으고 고개를 치켜든 채 안간힘을
다해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뒷좌석에서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구두를
벗고 의자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를 쳤지만 그는 못 들은 척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철학자 '하이데거'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 사람은 자기 양말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지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 양말로 저렇게 용감하게
의자 위에 올라가니 말이오."
'하이데거'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제야 그는 급히 의자에서 내려와 앉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내 양말에 어디 구멍이 있단 말이오?
이렇게 멀쩡한데."
보란 듯 그가 발을 교대로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양말에는 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이데거'는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당신 눈엔 그렇게 큰 구멍이 안 보인단 말이오?"
"아니, 이 사람이 누굴 바보로 아나? 당신 정말 자꾸
거짓말 할 거요?"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하이데거'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왜 구멍이 없단 말이오. 양말에 구멍이 없으면 어떻게
발을 집어넣는단 말이요?"
순간 주위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무안해진 그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재치로 인해 광장에
모였던 관중들은 바보들의 행진에 빠지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편안히 축제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축구장의 바보들
축구장에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축구장 스탠드 앞쪽에 앉은 관중 한 명이
좀 더 경기를 잘 보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그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차례로 모두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일어선 앞 사람 때문에 시야를 가린 뒷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일어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축구장 관중들은 모두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축구경기를 모두 불편하게 일어서서
봐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 얘기는 익히 잘 알려진 '축구장의 바보들'의 예화로,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화라고 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진 바보들의 행진
2000년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이러한 합성의
오류에 빠져버린 상황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일부 사람들은 부동산을 사서 재미를 보는
개인의 합리적 행동으로 선지자처럼 우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 부동산 시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소득으로 집을 사다가 나중에는
은행 빚을 내어 집을 샀습니다.
처음에 수천만 원 단위였던 빚도 1, 2억 원 수준으로
늘어나고 나중에는 수억 원씩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나서는 것이 예사가 돼버렸습니다.
결국 서로 집값 올리기 경쟁에 나선 꼴이 되었습니다.
2, 3억 원 정도면 충분할 집값이 이제 5억, 10억이
넘게되어 모두가 돈을 벌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물론, 각 개개인이 부동산 시장에 차례로 뛰어든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산 사람들이 돈 버는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또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값이 더 뛸까 불안해서 거액의 빚을
내어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점에는
정말 투기 광풍으로 '묻지마 투자'까지 횡행했습니다.
그 결과 수도권 집값은 평균 세 배 이상이나 폭등했고,
투자에 나선 가계의 대부분은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이데거' 같은 현자는 없었습니다.
서로 먼저 합성의 오류의 광풍 속으로 들어가는데 주저
하지 않았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경제는 속으로 곪아왔습니다.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생산경제에 가야 할
돈은 급격히 위축돼 버렸습니다.
부동산 비용 상승으로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인상된
임대료를 내느라 인건비를 줄여야 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실업과 비정규직
증가로 나타났습니다.
빚을 내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외환위기 직후 25%에
육박하던 가계 순 저축률은 2009년 말 3% 수준 이하로
10배나 곤두박질 쳤습니다.
과거 은행에서 이자수입을 타서 쓰던 가계들이 이제
은행에 매월 수십~수백만 원씩을 월세 내듯 꼬박꼬박
이자로 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국내 최고의 월세
임대사업자가 되었고, 1, 2백만 원씩을 은행 이자로 내고
난 가계들은 그만큼 소비를 줄여야 했고, 이는 지속적인
내수 침체로 이어져 더 더욱 생산경제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으로 소비가 늘게 된다는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실은 가계 부채 증가로 인한 내수 위축 효과는
훨씬 컸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GDP성장률 4~5%를 오르내렸던 상황에서도
서민경제는 침체기로 빠져 들어왔던 것입니다.
축구장에서 모든 관중들이 다 일어선다고 다 같은
시야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어린이는
일어서도 경기를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나만 잘 보겠다고 까치발을 하며까지 바보들의
행진에 많은 사람들의 이기와 탐욕이 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두 함께 다리가 아프다는 등 피곤을
호소하며 더 이상 서 있기에 곤란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2010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라 봅니다.
우리에게는 '하이데거' 같은 현자가 필요했건만 오히려
현자는커녕 자신이 먼저 일어나서 모두가 광분하기를
고취하는 치어리더의 율동만 난무했던 것이라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바보들의 행진이 지속될 수 없음은 자연의
순리라 할 것입니다.
축구장에 이성의 시간이 오면 먼저 지친 관중들부터
결국 자리에 주저앉기 마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광분이 멈추지 않는다면 이성을 잃지 않은
관중들부터 경기장을 빠져나갈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봅니다.
이미 흥분은 식고 이성의 시간은 다가왔다고 봅니다.
관중들도 많이 지쳐 있고요.
감이 빠른 관중들이 떠난 빈자리도 듬성 듬성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텅 빈 관중석에서 황당함을 맛 보지 않으시려면
지난 통념의 미련을 접는 데 늦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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